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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명·관직명은 통용 표기를 우선했고, 장문의 관용적 겸사와 상소문 문체는 뜻이 드러나도록 현대어로 풀었습니다.
《동현주의》 범례
1
원문
一,此書蓋以東方諸賢告君文字甚多,難於盡錄,故只載已從祀文廟九賢所論君德治道者,以從簡約焉。
현대어
우리나라 여러 현인들이 임금에게 올린 글은 매우 많아 모두 수록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문묘에 종사된 아홉 현인이 임금의 덕과 나라를 다스리는 도리에 관해 논한 글만을 실어 간략하게 하였다.
2
원문
一,所錄諸賢文字,皆各出於文集。而其中或有語意重疊,不至甚緊於君德者,則竝刪而不錄焉。
현대어
수록한 여러 현인의 글은 모두 각자의 문집에서 뽑았다. 그 가운데 말과 뜻이 거듭되거나 임금의 덕을 논하는 데 아주 긴요하지 않은 부분은 함께 덜어 내어 싣지 않았다.
3
원문
一,《中庸九經衍義》、《聖學輯要》兩書皆是別冊,似與疏箚不同。而文元公李彥迪、文成公李珥所自爲說者,亦多在其中,此蓋同爲告君之辭,故拈出而竝錄焉。
현대어
《중용구경연의》와 《성학집요》는 각각 독립된 책이므로 일반 상소나 차자와는 형식이 다르다. 그러나 문원공 이언적과 문성공 이이가 직접 논한 내용이 많이 들어 있고, 이 역시 임금에게 아뢴 말이라는 점에서는 같으므로 필요한 부분을 뽑아 함께 수록하였다.
4
원문
一,諸賢陳疏時事實曲折,自上宜不可不察。故各篇之下,不揆僭妄,敢以臣按略爲提論,仍及一二淺見,以冀財省焉。
현대어
여러 현인이 상소를 올리게 된 당시의 사실과 사정은 임금께서 살피지 않을 수 없는 내용이다. 그래서 분수에 넘치는 줄 알면서도 각 글 아래에 **‘신이 살펴보건대[臣按]’**라는 형식으로 그 배경을 간략히 정리하고, 때로는 한두 가지 얕은 견해도 덧붙였다. 바라건대 살펴 헤아려 주시기 바란다.
《동현주의》와 《속경연고사》를 올리는 상소
새로 가선대부 사헌부 대사헌 겸 세자시강원 찬선·성균관 좨주에 제수된 신 이희조는 황송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머리를 조아려 임금께 아룁니다.
성상의 병환이 오래 계속되는 가운데 최근 다시 심해져 약방의 신하들이 숙직 장소까지 옮겼다고 들었습니다. 조정 안팎의 신민 가운데 누가 애타고 걱정하지 않겠습니까. 하물며 이름이 조정의 신적에 올라 있고 외람되이 경의 반열에 있는 신의 마음은 어떠하겠습니까. 그러나 신은 병이 깊어 거의 죽을 지경이라 부르시는 명을 받고도 나아가지 못했고, 한 번도 조정에 가서 문후드리는 반열에 참여하지 못한 채 북쪽 궁궐을 바라보며 날마다 죄를 기다릴 뿐입니다.
신은 보잘것없는 몸으로 헤아릴 수 없이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현재 맡은 본직과 겸직 세 자리는 모두 조정에서 가장 중대한 자리이며, 전후로 전하와 세자 저하께서 내려 주신 비답과 말씀 또한 신처럼 미천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합당한 부름이 아니면 죽어도 나아가지 않았다는 옛사람의 의리를 지키려 여러 해 힘껏 사양했지만 끝내 명을 받들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늘 병으로 쓰러져 있고 다리 병이 특히 심해 군함 하나조차 사직하려던 뜻을 이루지 못했으니, 사사로운 마음의 두려움은 깊은 골짜기에 떨어지는 듯합니다.
봄에는 딸이 도성에서 죽었으나 병 때문에 가서 곡하지도 못했습니다. 병세가 더욱 심해져 여름 내내 위중했고 숨이 실처럼 가늘어 하루하루를 겨우 보냈습니다. 최근에는 아내의 상까지 당하여 거듭 쇠약해졌으니 이제 죽을 날이 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돌이켜 보면 신은 본래 대대로 벼슬한 집안 사람이고 반평생 관직에 있었으니, 몸을 깨끗이 지키며 산림에 은둔해 세상을 떠난 사람과는 다릅니다. 다만 노병으로 쓰러져 지내는 사이 헛된 이름이 위에 잘못 알려져 이처럼 지나친 은총을 입었을 뿐입니다. 이대로 하루아침에 목숨이 끊어진다면 살아서는 신하의 의리를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하고, 죽어서는 임금의 은혜를 저버린 귀신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미천한 의견을 올려 마지막 충성을 다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평생 배운 것이 텅 비어 성상의 정치에 보탤 만한 것이 없습니다. 생각 끝에 우리나라 현인들이 임금의 덕과 치도의 길을 논한 글을 뽑아 올린다면 시대가 비교적 가까워 거울삼아 살피기에 더욱 절실하겠다고 여겼습니다.
이에 문묘에 종사된 아홉 현인의 상소·차자와 그 밖의 임금에게 올린 글들을 뽑아 한 책으로 엮고 이름을 《동현주의》라 하였습니다. 각 글 아래에는 신의 보잘것없는 의견 한두 가지도 간략히 붙였습니다. 모두 여덟 책으로 만들어 흰 보자기에 싸서 감히 전하께 바칩니다. 바라건대 굽어 살펴 받아 주십시오.
신이 생각하건대 문충공 정몽주는 실로 우리나라 성리학의 시조입니다. 본조에 들어와서는 문경공 김굉필, 문헌공 정여창, 문정공 조광조, 문원공 이언적, 문순공 이황, 문성공 이이, 문간공 성혼, 문원공 김장생이 차례로 나와 유학의 종장이 되었습니다. 임금을 만난 정도와 벼슬의 높낮이는 서로 달랐지만 이들이 올린 상소와 임금에게 고한 글은 대체로 명백하고 올바르며, 글자마다 절실하여 임금의 덕과 나라의 정치에 크게 도움이 됩니다.
그 가운데에는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나라를 튼튼하게 하는 방책, 안을 닦고 밖의 침입을 물리치는 방법도 많이 있습니다. 오늘날 그대로 시행할 수 있는 내용도 적지 않습니다. 바라건대 전하께서 특별히 살펴 보시고 병환이 조금 나아 정신이 회복될 때 홍문관 관원을 침전으로 불러 예를 간략히 한 뒤 몇 판씩 읽게 하십시오. 눈병에는 큰 부담이 되지 않으면서 답답한 기운도 풀 수 있을 것입니다.
몇 달에 걸쳐 모두 들으신 뒤에는 다시 왕세자 저하에게 보여 주어 여유 있게 읽게 해 주십시오. 한마디 한 구절도 그냥 넘기지 않고 반드시 몸소 체득하고 시행하려 한다면, 아홉 현인이 날마다 좌우에서 모시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임금의 덕이 완성되고 정치의 도가 밝아지는 모습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신은 일찍이 문순공 박세채가 《정주경연고사》 한 책을 편찬하여 올려 전하께서 특별히 기쁘게 받아들인 일을 보았습니다. 이번 아홉 현인 가운데 조광조·이황·이이·성혼·김장생 다섯 현인에게도 경연에서 아뢴 말이 각각 남아 있습니다. 그 말은 더욱 정밀하고 간절하며 임금에게 기대한 뜻이 매우 깊고 무거워, 요순의 도가 아니면 말하지 않았다고 할 만하고 정자와 주자의 학문을 이은 자취가 있습니다.
이에 박세채의 전례를 따라 두 책으로 편찬하여 《속경연고사》라 이름하고 《동현주의》와 함께 올립니다. 이 책 또한 《동현주의》와 똑같이 다루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신이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참람하고 외람된 줄 잘 압니다. 그러나 죽음이 가까워 오니 이것으로 조금이나마 은혜에 보답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성상께서 병환을 조용히 다스리시는 중에 번거롭게 해 드리는 죄를 무릅썼고, 현의 행정 절차를 거치지 않고 집안 종을 시켜 바로 승정원에 올리게 했습니다. 죄가 더욱 큽니다.
신은 명을 받들어 조정에 나아갈 길도 없는데 중한 직임을 헛되이 오래 차지하고 있습니다. 나라의 체통으로 보아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바라건대 천지 부모와 같은 전하께서는 신이 죽어 가는 실제 형편을 헤아려 본직과 겸직을 모두 파면해 주십시오. 그러면 마음 편히 생을 마칠 수 있어 더없는 다행이겠습니다.
마음이 절박하여 말에 두서가 없습니다. 상소를 마주하고 눈물을 흘리니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간절히 빌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며 죽음을 무릅쓰고 아룁니다.
임금의 답
“상소를 보고 경의 간절한 뜻을 모두 알았다. 경이 나라와 임금을 걱정하고 사랑하는 정성은 늙을수록 더욱 깊구나. 뽑아 올린 열 책의 내용이 매우 정밀하고 절실하여 칭찬하고 감탄해 마지않는다. 여유 있게 모두 살펴본 뒤에는 세자에게도 보여 주어 오로지 마음을 기울여 체득하게 하겠다. 경은 세자가 간절히 부르고 있는 뜻을 생각하여 마음 놓고 사양하지 말고 속히 올라와 직무를 수행하라.”
편찬 대상 아홉 현인
- 정몽주(鄭夢周)
- 김굉필(金宏弼)
- 정여창(鄭汝昌)
- 조광조(趙光祖)
- 이언적(李彥迪)
- 이황(李滉)
- 이이(李珥)
- 성혼(成渾)
- 김장생(金長生)
《동현주의》는 이들의 글을 단순히 모아 둔 문집이 아니라, 군덕과 치도라는 주제로 다시 선별·편집하고 이희조 자신의 해설을 붙인 정치·성리학 선집이라는 점이 범례와 진서 상소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