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rss version="2.0" xmlns:content="http://purl.org/rss/1.0/modules/content/"><channel><title>KorClassIC</title><description>열린 한국 고전 번역 아카이브</description><link>https://korclassic.pma.kr/</link><language>ko</language><item><title>동현주의 — 범례와 진서(進書) 상소</title><link>https://korclassic.pma.kr/posts/donghyeonjuui-00/</link><guid isPermaLink="true">https://korclassic.pma.kr/posts/donghyeonjuui-00/</guid><description>이희조가 《동현주의》를 편찬한 원칙과 숙종에게 책을 올린 상소의 현대 한국어 AI 초벌 번역.</description><pubDate>Tue, 15 Sep 2026 00:00:00 GMT</pubDate><content:encoded>&lt;blockquote&gt;
&lt;p&gt;&lt;strong&gt;번역 상태: AI 초벌 번역 완료 · 인문학 검수 전&lt;/strong&gt;&lt;br /&gt;
인명·관직명은 통용 표기를 우선했고, 장문의 관용적 겸사와 상소문 문체는 뜻이 드러나도록 현대어로 풀었습니다.&lt;/p&gt;
&lt;/blockquote&gt;
&lt;h1&gt;《동현주의》 범례&lt;/h1&gt;
&lt;h2&gt;1&lt;/h2&gt;
&lt;h3&gt;원문&lt;/h3&gt;
&lt;blockquote&gt;
&lt;p&gt;一，此書蓋以東方諸賢告君文字甚多，難於盡錄，故只載已從祀文廟九賢所論君德治道者，以從簡約焉。&lt;/p&gt;
&lt;/blockquote&gt;
&lt;h3&gt;현대어&lt;/h3&gt;
&lt;p&gt;우리나라 여러 현인들이 임금에게 올린 글은 매우 많아 모두 수록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문묘에 종사된 아홉 현인이 &lt;strong&gt;임금의 덕과 나라를 다스리는 도리&lt;/strong&gt;에 관해 논한 글만을 실어 간략하게 하였다.&lt;/p&gt;
&lt;h2&gt;2&lt;/h2&gt;
&lt;h3&gt;원문&lt;/h3&gt;
&lt;blockquote&gt;
&lt;p&gt;一，所錄諸賢文字，皆各出於文集。而其中或有語意重疊，不至甚緊於君德者，則竝刪而不錄焉。&lt;/p&gt;
&lt;/blockquote&gt;
&lt;h3&gt;현대어&lt;/h3&gt;
&lt;p&gt;수록한 여러 현인의 글은 모두 각자의 문집에서 뽑았다. 그 가운데 말과 뜻이 거듭되거나 임금의 덕을 논하는 데 아주 긴요하지 않은 부분은 함께 덜어 내어 싣지 않았다.&lt;/p&gt;
&lt;h2&gt;3&lt;/h2&gt;
&lt;h3&gt;원문&lt;/h3&gt;
&lt;blockquote&gt;
&lt;p&gt;一，《中庸九經衍義》、《聖學輯要》兩書皆是別冊，似與疏箚不同。而文元公李彥迪、文成公李珥所自爲說者，亦多在其中，此蓋同爲告君之辭，故拈出而竝錄焉。&lt;/p&gt;
&lt;/blockquote&gt;
&lt;h3&gt;현대어&lt;/h3&gt;
&lt;p&gt;《중용구경연의》와 《성학집요》는 각각 독립된 책이므로 일반 상소나 차자와는 형식이 다르다. 그러나 문원공 이언적과 문성공 이이가 직접 논한 내용이 많이 들어 있고, 이 역시 임금에게 아뢴 말이라는 점에서는 같으므로 필요한 부분을 뽑아 함께 수록하였다.&lt;/p&gt;
&lt;h2&gt;4&lt;/h2&gt;
&lt;h3&gt;원문&lt;/h3&gt;
&lt;blockquote&gt;
&lt;p&gt;一，諸賢陳疏時事實曲折，自上宜不可不察。故各篇之下，不揆僭妄，敢以臣按略爲提論，仍及一二淺見，以冀財省焉。&lt;/p&gt;
&lt;/blockquote&gt;
&lt;h3&gt;현대어&lt;/h3&gt;
&lt;p&gt;여러 현인이 상소를 올리게 된 당시의 사실과 사정은 임금께서 살피지 않을 수 없는 내용이다. 그래서 분수에 넘치는 줄 알면서도 각 글 아래에 **‘신이 살펴보건대[臣按]’**라는 형식으로 그 배경을 간략히 정리하고, 때로는 한두 가지 얕은 견해도 덧붙였다. 바라건대 살펴 헤아려 주시기 바란다.&lt;/p&gt;
&lt;hr /&gt;
&lt;h1&gt;《동현주의》와 《속경연고사》를 올리는 상소&lt;/h1&gt;
&lt;p&gt;새로 가선대부 사헌부 대사헌 겸 세자시강원 찬선·성균관 좨주에 제수된 신 이희조는 황송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머리를 조아려 임금께 아룁니다.&lt;/p&gt;
&lt;p&gt;성상의 병환이 오래 계속되는 가운데 최근 다시 심해져 약방의 신하들이 숙직 장소까지 옮겼다고 들었습니다. 조정 안팎의 신민 가운데 누가 애타고 걱정하지 않겠습니까. 하물며 이름이 조정의 신적에 올라 있고 외람되이 경의 반열에 있는 신의 마음은 어떠하겠습니까. 그러나 신은 병이 깊어 거의 죽을 지경이라 부르시는 명을 받고도 나아가지 못했고, 한 번도 조정에 가서 문후드리는 반열에 참여하지 못한 채 북쪽 궁궐을 바라보며 날마다 죄를 기다릴 뿐입니다.&lt;/p&gt;
&lt;p&gt;신은 보잘것없는 몸으로 헤아릴 수 없이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현재 맡은 본직과 겸직 세 자리는 모두 조정에서 가장 중대한 자리이며, 전후로 전하와 세자 저하께서 내려 주신 비답과 말씀 또한 신처럼 미천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합당한 부름이 아니면 죽어도 나아가지 않았다는 옛사람의 의리를 지키려 여러 해 힘껏 사양했지만 끝내 명을 받들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늘 병으로 쓰러져 있고 다리 병이 특히 심해 군함 하나조차 사직하려던 뜻을 이루지 못했으니, 사사로운 마음의 두려움은 깊은 골짜기에 떨어지는 듯합니다.&lt;/p&gt;
&lt;p&gt;봄에는 딸이 도성에서 죽었으나 병 때문에 가서 곡하지도 못했습니다. 병세가 더욱 심해져 여름 내내 위중했고 숨이 실처럼 가늘어 하루하루를 겨우 보냈습니다. 최근에는 아내의 상까지 당하여 거듭 쇠약해졌으니 이제 죽을 날이 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lt;/p&gt;
&lt;p&gt;돌이켜 보면 신은 본래 대대로 벼슬한 집안 사람이고 반평생 관직에 있었으니, 몸을 깨끗이 지키며 산림에 은둔해 세상을 떠난 사람과는 다릅니다. 다만 노병으로 쓰러져 지내는 사이 헛된 이름이 위에 잘못 알려져 이처럼 지나친 은총을 입었을 뿐입니다. 이대로 하루아침에 목숨이 끊어진다면 살아서는 신하의 의리를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하고, 죽어서는 임금의 은혜를 저버린 귀신이 되고 말 것입니다.&lt;/p&gt;
&lt;p&gt;그래서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미천한 의견을 올려 마지막 충성을 다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평생 배운 것이 텅 비어 성상의 정치에 보탤 만한 것이 없습니다. 생각 끝에 &lt;strong&gt;우리나라 현인들이 임금의 덕과 치도의 길을 논한 글을 뽑아 올린다면 시대가 비교적 가까워 거울삼아 살피기에 더욱 절실하겠다&lt;/strong&gt;고 여겼습니다.&lt;/p&gt;
&lt;p&gt;이에 문묘에 종사된 아홉 현인의 상소·차자와 그 밖의 임금에게 올린 글들을 뽑아 한 책으로 엮고 이름을 《동현주의》라 하였습니다. 각 글 아래에는 신의 보잘것없는 의견 한두 가지도 간략히 붙였습니다. 모두 여덟 책으로 만들어 흰 보자기에 싸서 감히 전하께 바칩니다. 바라건대 굽어 살펴 받아 주십시오.&lt;/p&gt;
&lt;p&gt;신이 생각하건대 문충공 &lt;strong&gt;정몽주&lt;/strong&gt;는 실로 우리나라 성리학의 시조입니다. 본조에 들어와서는 문경공 &lt;strong&gt;김굉필&lt;/strong&gt;, 문헌공 &lt;strong&gt;정여창&lt;/strong&gt;, 문정공 &lt;strong&gt;조광조&lt;/strong&gt;, 문원공 &lt;strong&gt;이언적&lt;/strong&gt;, 문순공 &lt;strong&gt;이황&lt;/strong&gt;, 문성공 &lt;strong&gt;이이&lt;/strong&gt;, 문간공 &lt;strong&gt;성혼&lt;/strong&gt;, 문원공 &lt;strong&gt;김장생&lt;/strong&gt;이 차례로 나와 유학의 종장이 되었습니다. 임금을 만난 정도와 벼슬의 높낮이는 서로 달랐지만 이들이 올린 상소와 임금에게 고한 글은 대체로 명백하고 올바르며, 글자마다 절실하여 임금의 덕과 나라의 정치에 크게 도움이 됩니다.&lt;/p&gt;
&lt;p&gt;그 가운데에는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나라를 튼튼하게 하는 방책, 안을 닦고 밖의 침입을 물리치는 방법도 많이 있습니다. 오늘날 그대로 시행할 수 있는 내용도 적지 않습니다. 바라건대 전하께서 특별히 살펴 보시고 병환이 조금 나아 정신이 회복될 때 홍문관 관원을 침전으로 불러 예를 간략히 한 뒤 몇 판씩 읽게 하십시오. 눈병에는 큰 부담이 되지 않으면서 답답한 기운도 풀 수 있을 것입니다.&lt;/p&gt;
&lt;p&gt;몇 달에 걸쳐 모두 들으신 뒤에는 다시 왕세자 저하에게 보여 주어 여유 있게 읽게 해 주십시오. 한마디 한 구절도 그냥 넘기지 않고 반드시 몸소 체득하고 시행하려 한다면, 아홉 현인이 날마다 좌우에서 모시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임금의 덕이 완성되고 정치의 도가 밝아지는 모습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lt;/p&gt;
&lt;p&gt;또 신은 일찍이 문순공 &lt;strong&gt;박세채&lt;/strong&gt;가 《정주경연고사》 한 책을 편찬하여 올려 전하께서 특별히 기쁘게 받아들인 일을 보았습니다. 이번 아홉 현인 가운데 조광조·이황·이이·성혼·김장생 다섯 현인에게도 경연에서 아뢴 말이 각각 남아 있습니다. 그 말은 더욱 정밀하고 간절하며 임금에게 기대한 뜻이 매우 깊고 무거워, 요순의 도가 아니면 말하지 않았다고 할 만하고 정자와 주자의 학문을 이은 자취가 있습니다.&lt;/p&gt;
&lt;p&gt;이에 박세채의 전례를 따라 두 책으로 편찬하여 《속경연고사》라 이름하고 《동현주의》와 함께 올립니다. 이 책 또한 《동현주의》와 똑같이 다루어 주시기를 바랍니다.&lt;/p&gt;
&lt;p&gt;신이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참람하고 외람된 줄 잘 압니다. 그러나 죽음이 가까워 오니 이것으로 조금이나마 은혜에 보답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성상께서 병환을 조용히 다스리시는 중에 번거롭게 해 드리는 죄를 무릅썼고, 현의 행정 절차를 거치지 않고 집안 종을 시켜 바로 승정원에 올리게 했습니다. 죄가 더욱 큽니다.&lt;/p&gt;
&lt;p&gt;신은 명을 받들어 조정에 나아갈 길도 없는데 중한 직임을 헛되이 오래 차지하고 있습니다. 나라의 체통으로 보아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바라건대 천지 부모와 같은 전하께서는 신이 죽어 가는 실제 형편을 헤아려 본직과 겸직을 모두 파면해 주십시오. 그러면 마음 편히 생을 마칠 수 있어 더없는 다행이겠습니다.&lt;/p&gt;
&lt;p&gt;마음이 절박하여 말에 두서가 없습니다. 상소를 마주하고 눈물을 흘리니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간절히 빌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며 죽음을 무릅쓰고 아룁니다.&lt;/p&gt;
&lt;h2&gt;임금의 답&lt;/h2&gt;
&lt;blockquote&gt;
&lt;p&gt;“상소를 보고 경의 간절한 뜻을 모두 알았다. 경이 나라와 임금을 걱정하고 사랑하는 정성은 늙을수록 더욱 깊구나. 뽑아 올린 열 책의 내용이 매우 정밀하고 절실하여 칭찬하고 감탄해 마지않는다. 여유 있게 모두 살펴본 뒤에는 세자에게도 보여 주어 오로지 마음을 기울여 체득하게 하겠다. 경은 세자가 간절히 부르고 있는 뜻을 생각하여 마음 놓고 사양하지 말고 속히 올라와 직무를 수행하라.”&lt;/p&gt;
&lt;/blockquote&gt;
&lt;hr /&gt;
&lt;h2&gt;편찬 대상 아홉 현인&lt;/h2&gt;
&lt;ol&gt;
&lt;li&gt;정몽주(鄭夢周)&lt;/li&gt;
&lt;li&gt;김굉필(金宏弼)&lt;/li&gt;
&lt;li&gt;정여창(鄭汝昌)&lt;/li&gt;
&lt;li&gt;조광조(趙光祖)&lt;/li&gt;
&lt;li&gt;이언적(李彥迪)&lt;/li&gt;
&lt;li&gt;이황(李滉)&lt;/li&gt;
&lt;li&gt;이이(李珥)&lt;/li&gt;
&lt;li&gt;성혼(成渾)&lt;/li&gt;
&lt;li&gt;김장생(金長生)&lt;/li&gt;
&lt;/ol&gt;
&lt;p&gt;《동현주의》는 이들의 글을 단순히 모아 둔 문집이 아니라, &lt;strong&gt;군덕과 치도라는 주제로 다시 선별·편집하고 이희조 자신의 해설을 붙인 정치·성리학 선집&lt;/strong&gt;이라는 점이 범례와 진서 상소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lt;/p&gt;
</content:encoded></item><item><title>동현주의 (東賢奏議)</title><link>https://korclassic.pma.kr/posts/donghyeonjuui/</link><guid isPermaLink="true">https://korclassic.pma.kr/posts/donghyeonjuui/</guid><description>여러 선현의 상소와 논의를 모은 자료. 개별 글의 기존 번역과 중복 여부까지 확인해 공개 범위를 정할 예정입니다.</description><pubDate>Tue, 15 Sep 2026 00:00:00 GMT</pubDate><content:encoded>&lt;h2&gt;조사 예정&lt;/h2&gt;
&lt;p&gt;편찬물에 실린 개별 글은 다른 문집에서 이미 번역되었을 수 있으므로, &lt;strong&gt;책 전체의 번역 여부와 개별 수록문의 번역 여부를 나누어 조사&lt;/strong&gt;합니다.&lt;/p&gt;
&lt;p&gt;KorClassIC에서는 중복 번역이 발견되면 기존 번역의 존재를 숨기지 않고 참고 링크와 비교 검토 정보를 함께 남기는 방향을 목표로 합니다.&lt;/p&gt;
</content:encoded></item><item><title>농산집 권1 — 시(詩)</title><link>https://korclassic.pma.kr/posts/nongsanjip-01/</link><guid isPermaLink="true">https://korclassic.pma.kr/posts/nongsanjip-01/</guid><description>신득구 《농산집》 권1 수록 시 95제의 현대 한국어 AI 초벌 번역.</description><pubDate>Tue, 15 Sep 2026 00:00:00 GMT</pubDate><content:encoded>&lt;blockquote&gt;
&lt;p&gt;&lt;strong&gt;번역 상태: 권1 AI 초벌 번역 완료 · 교감/인문학 검수 전&lt;/strong&gt;&lt;br /&gt;
원문은 한국고전번역원 공공데이터의 《농산집》과 공개 원문을 대조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시어·전고·인명 표기는 후속 교감에서 수정될 수 있습니다. 이 글의 현대어는 운율을 재현한 번역시가 아니라 &lt;strong&gt;의미 전달을 우선한 산문형 초벌 번역&lt;/strong&gt;입니다.&lt;/p&gt;
&lt;/blockquote&gt;
&lt;ul&gt;
&lt;li&gt;공공데이터: 한국고전번역원_한국문집총간_농산집_20211213&lt;/li&gt;
&lt;li&gt;저자: 농산 신득구(申得求, 1850~1900)&lt;/li&gt;
&lt;li&gt;권1 체재: 시(詩)&lt;/li&gt;
&lt;li&gt;대조 공개 원문: 위키문헌 《農山先生文集 (申得求)/卷一》&lt;/li&gt;
&lt;/ul&gt;
&lt;hr /&gt;
&lt;h2&gt;1. 偶吟 — 우연히 읊다&lt;/h2&gt;
&lt;p&gt;아직 한 가지 재주도 이루지 못한 채 스무 번의 봄을 지냈다. 오늘 스승을 찾아 길을 떠나니, 참된 도를 듣겠다고 스스로 다짐한다.&lt;/p&gt;
&lt;h2&gt;2. 庚午除夜 — 경오년 섣달그믐&lt;/h2&gt;
&lt;p&gt;스물두 해를 맞아 스스로를 돌아보니 생각이 깊어진다. 둔한 자질은 바로잡기 어렵고 달리는 세월은 붙들어 둘 수 없다. 공부는 하나로 꿰뚫는 데 힘써야 하고, 이치는 만 가지로 달라지는 사물 속에서 끝까지 궁구해야 한다. 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 힘쓸지어다, 헛되이 노닐지 말라.&lt;/p&gt;
&lt;h2&gt;3. 慕古堂詠懷 — 모고당에서 회포를 읊다&lt;/h2&gt;
&lt;p&gt;나는 재주가 없어 세상과 능숙하게 어울리지 못했다. 세상도 나도 서로 잊고 지냈지만, 다행히 책 속의 옛사람들은 못나고 졸렬한 나를 버리지 않아 날마다 가까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옛사람을 벗 삼는 뜻을 취해 거처를 ‘모고(慕古)’라 이름하였다.&lt;/p&gt;
&lt;p&gt;바닷가에 사는 이 ‘옛것을 사모하는 사람’은 남이 보면 우습기까지 하다. 타고난 바탕은 둔하고 세속의 가락에는 맞지 않는다. 스물한 살이 되어 호남의 고개를 넘어 스승을 찾았고, 덕망 높은 고산의 노선생에게서 옛 성현의 학문을 들었다. 나는 스스로를 격려하여 요·순의 공경, 공·맹의 인의를 본받고자 했다. 학문은 남에게 보이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며, 밖에서 명예를 구해서는 아무 이익이 없다. 널리 배우되 요점을 잃지 말고, 사물과 나 사이에 막힘 없이 이치를 궁구하며, 앎과 실천을 모두 ‘경(敬)’으로 지탱해야 기질을 바꿀 수 있다. 공부는 때를 놓치지 않되 조급하지도 게으르지도 않아야 한다. 천 년 전 성현도 책을 펼치면 바로 오늘 만나는 사람과 같으니, 뜻을 함께하는 벗들에게 힘써 쉬지 말라고 당부한다.&lt;/p&gt;
&lt;h2&gt;4. 追次皷山老先生壽席韻 — 고산 노선생 수연의 운을 뒤늦게 차운하다&lt;/h2&gt;
&lt;p&gt;천지의 빼어난 기운이 오랜 세월 모여 신미년에 우리 선생을 낳았다. 이제 예순을 맞으셨는데, 이날 오히려 어린아이처럼 스승을 사모하는 마음이 더 간절해진다. 덕과 학업이 함께 높으니 어진 사람은 반드시 장수하리라. 남극성의 빛을 빌려 끝없는 세월까지 비추시기를 바란다.&lt;/p&gt;
&lt;h2&gt;5. 敬次老先生讀大學韻 — 노선생의 「대학을 읽다」 시에 삼가 차운하다&lt;/h2&gt;
&lt;p&gt;성현의 문호가 얼마나 깊은지 아직 엿보지도 못한 채 스무 해가 뱀처럼 달려가 버렸다. 전해 받은 《대학》 한 권을 스승께서 자로 재듯 가르쳐 주셨으니, 내 힘을 다해 평생 공부하고자 한다.&lt;/p&gt;
&lt;h2&gt;6. 拜次蒼碧亭原韻 — 창벽정 원운에 삼가 차운하다&lt;/h2&gt;
&lt;p&gt;인과 지를 읊은 시를 소리 내어 읽으니 무이산에 앉아 있는 듯하다. 학문의 연원은 끊임없이 흐르고, 창벽정 앞 물에는 가을 달빛이 비친다.&lt;/p&gt;
&lt;h2&gt;7. 謹呈野愚徐丈 政淳 以要和 二首 — 야우 서정순 어른께 삼가 올리며 화답을 구하다&lt;/h2&gt;
&lt;p&gt;풍천정 아래 물에는 밤마다 달빛이 더욱 짙다. 맑고 참된 마음이 서로 통하는 모습을 생각하니 티 없이 환하다.&lt;/p&gt;
&lt;p&gt;도를 닦은 이의 공부는 이미 익어 자연스럽게 그 소식이 드러난다. 나처럼 고질병이 깊은 사람에게도 그 신묘한 약 한 몫을 나누어 주시기를 바란다.&lt;/p&gt;
&lt;h2&gt;8. 敬呈李斯文 瓛在 — 이 사문에게 삼가 드리다&lt;/h2&gt;
&lt;p&gt;세속에서 허둥대는 자취를 벗고 예로써 사양하고 양보하는 사이에 몸을 두었다. 앞길은 만 리나 멀지만 나 또한 안연을 본받아 가고자 한다.&lt;/p&gt;
&lt;h2&gt;9. 辛未洋警… — 신미년 양요 때 어재연 형제의 죽음을 듣고&lt;/h2&gt;
&lt;p&gt;장하도다, 어 중군이여. 충성과 절개가 한 집안에 빛난다. 그에게 죽음은 마치 차와 밥처럼 평범했으나 나는 그 뜻을 북두와 큰 산처럼 우러러본다. 죽어서라도 순찰하는 매서운 귀신이 되고 의로운 선비들이 다시 얼굴을 들면, 서양의 적들이 간담이 서늘해져 끝내 강토가 평정되는 날을 보리라.&lt;/p&gt;
&lt;h2&gt;10. 讀三學士傳 — 삼학사전을 읽다&lt;/h2&gt;
&lt;p&gt;차가운 옷깃을 여미고 삼학사의 상소를 읽는다. 말은 간절하고 울림은 슬프다. 그들은 《춘추》의 으뜸가는 대의를 마음에 두고 하늘과 해처럼 둘도 없는 의리를 취했다. 몸을 백 번 되살릴 수 있다면 천 년 뒤에 태어난 것이 한스럽다. 세 사람이 같은 절개를 지켜 오륜을 밝혔다. 오늘 읽는 뜻있는 선비의 뺨에도 눈물이 가득하다.&lt;/p&gt;
&lt;h2&gt;11. 辛未除夜… 二首 — 신미년 섣달그믐, 부친을 모시고 《매산집》을 읽으며&lt;/h2&gt;
&lt;p&gt;섣달그믐 한 자리에 누워도 잠들기 어려워 책을 세세히 펼쳐 본다. 일어나 남두성을 보니 별빛이 크고 밝다. 노래자처럼 어버이를 즐겁게 해 드리며 백 년을 지내고 싶다.&lt;/p&gt;
&lt;p&gt;푸른 등불은 밝고 흰 구름은 문을 두른다. 밤을 새우며 계절과 별자리가 바뀌는 것을 느낀다. 내 마음에도 새 뜻이 자라나니, 침상 머리의 옛 성현 경전에서 깊은 맛을 얻는다.&lt;/p&gt;
&lt;h2&gt;12. 謹呈老先生 三首 — 노선생께 삼가 올리다&lt;/h2&gt;
&lt;p&gt;동쪽 노나라의 영광 같은 선생이 계시니 우러러봄이 태산보다 높다. 하늘이 우리 도를 붙드는 뜻을 알겠고, 온갖 물줄기가 흩어져 달려가도 선생만은 참된 근원이다.&lt;/p&gt;
&lt;p&gt;염계 주돈이를 다시 만난 듯 노래가 많다. 천 년 뒤 용문에도 그 여운이 남았다. 스승 곁의 밝고 화한 즐거움을 직접 누리니 오늘이 봄처럼 따뜻하다.&lt;/p&gt;
&lt;p&gt;흰 구름을 바라보며 고향 생각이 깊어지고 천 리 밖에서 문득 가을이 깊음을 깨닫는다. 집을 떠나 스승 곁에 온 참된 약효를 얻었지만 산 가득한 바람과 달을 두고 떠날 생각에는 서글픔을 금할 수 없다.&lt;/p&gt;
&lt;h2&gt;13. 乙亥除夜 示再從弟道彦 直求 — 을해년 섣달그믐, 재종제 도언에게&lt;/h2&gt;
&lt;p&gt;나는 이미 아버지를 잃어 쓸쓸히 온갖 감회가 일어난다. 함께 시를 짓던 일이 어제 같은데 이제 목소리와 웃음은 저승과 이승으로 갈렸다. 외로운 그림자는 등불과 벽에 기대고, 빗소리는 차갑게 길을 지난다. 그 마음을 아는 네가 있으니 무엇으로 내 슬픔을 위로할 수 있을까.&lt;/p&gt;
&lt;h2&gt;14. 詠爲惡 — 악행을 읊다&lt;/h2&gt;
&lt;p&gt;남이 알아볼까 두려워 겉을 온갖 방법으로 꾸민다. 다른 사람은 속일 수 있다 해도 자기 마음의 신령한 거울은 어떻게 속이겠는가.&lt;/p&gt;
&lt;h2&gt;15. 過萬馬關有感 — 만마관을 지나며&lt;/h2&gt;
&lt;p&gt;지형의 험준함만 믿을 수는 없다. 사람의 마음을 단단히 하는 것이 진짜 금성철벽이다. 태평한 세상에는 병기에 피 묻힐 일이 없으니, 임금의 덕업이 이루어지기를 절하며 빈다.&lt;/p&gt;
&lt;h2&gt;16. 登般若峯 次尤菴先生金剛山韻 四首 — 반야봉에 올라 우암의 금강산 운을 차운하다&lt;/h2&gt;
&lt;p&gt;하늘 끝에서 뜬구름이 일어도 감히 산의 참모습을 가리지 못한다. 유자와 불자가 함께 우러러보는 해동의 반야봉이다.&lt;/p&gt;
&lt;p&gt;조물주에게 묻는다. 무슨 뜻으로 이 외진 나라에 이처럼 큰 산을 두었는가. 중국의 오악이 흐려질 줄 미리 알고 이 봉우리를 따로 남겨 둔 것인가.&lt;/p&gt;
&lt;p&gt;하늘과 한 자도 안 될 만큼 가까이 올라 옥황의 얼굴을 마주한 듯하다. 흡족한 비를 빌려 집집마다 곡식 창고가 봉우리처럼 쌓이기를 바란다.&lt;/p&gt;
&lt;p&gt;조정의 큰 그릇으로 쓰일 듯 의젓하면서도 너그럽다. 나는 절하며 이 봉우리를 ‘장인봉’이라 부른다.&lt;/p&gt;
&lt;h2&gt;17. 詠魯仲連 — 노중련을 읊다&lt;/h2&gt;
&lt;p&gt;주나라 말 왕도의 기강이 무너지고 예의가 먼저 붕괴하자 제후들은 지략과 힘만 숭상하며 해마다 서로 침략했다. 위나라 사람 신연은 진을 황제로 받들자고 했지만, 제나라 동쪽의 선비 노중련은 호방한 절개로 이를 거부하고 차라리 동해에 몸을 던지겠다고 했다. 그 대의는 가을 서리와 얼음처럼 천 년 뒤에도 늠름하다. 이는 무엇을 억지로 만든 것이 아니라 천리가 저절로 일어난 것이다. 공리만 서두른 사람들은 이 한결같은 이치를 잃었다. 그의 명성을 생각하면 내 마음에도 감개가 맺힌다.&lt;/p&gt;
&lt;h2&gt;18. 三憂 — 세 가지 근심&lt;/h2&gt;
&lt;p&gt;병자년 정월, 서양과 일본의 위협이 사방을 뒤흔든다는 소식을 듣고 세 가지 근심을 노래한다. 첫째는 나라와 임금을 위한 근심이다. 밤마다 꿈속에서 궁궐에 나아가 요순의 정치가 이루어지기를 빌며, 장순·허원과 문천상 같은 충성을 다하고 싶어 한다. 둘째는 병환 중인 스승에 대한 근심이다. 나라가 위급한 때에 스승의 뜻을 받들고 찾아뵙고 싶지만 길에는 위험이 가득하다. 셋째는 일흔의 노모를 향한 근심이다. 자신뿐 아니라 어머니까지 나라를 걱정하니, 자식으로서 어떻게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려야 할지 애가 탄다고 한다.&lt;/p&gt;
&lt;h2&gt;19. 見龍石庵雅誦書 路中感懷 呈老先生 — 용석암의 글을 보고 길에서 느껴 선생께 올리다&lt;/h2&gt;
&lt;p&gt;다행히 나는 해동의 나라에 태어나 명나라의 의관과 문물을 이어받았다. 이 몸으로 《춘추》의 의리를 밝히고 싶다. 만 길 소나무 같은 높은 절개를 사람들이 다투어 바라본다.&lt;/p&gt;
&lt;h2&gt;20. 敬次星田卜居韻 二首 — 성전의 복거시에 삼가 차운하다&lt;/h2&gt;
&lt;p&gt;병자년에 강가 집이 처음 이루어지니 선생의 맑은 복을 우러러 기뻐한다. 도를 지키는 사람을 하늘이 완전히 가난하게 하지는 않아 수놓은 듯한 구름 산에 삶의 터를 내려 주었다.&lt;/p&gt;
&lt;p&gt;초강의 물은 하늘보다 푸르고 전월산은 몇 만 년이나 푸르다. 옛사람처럼 축원하노니 훗날 이곳에 한 집안의 자손이 백천으로 모이기를 바란다.&lt;/p&gt;
&lt;h2&gt;21. 次玉井詩 — 옥정시에 차운하다&lt;/h2&gt;
&lt;p&gt;밭 위로 백로가 날아간 뒤 우물 속에서 다시 옥이 나왔다. 하늘이 말없이 감응하여 도운 듯 아름다운 대대로 살아온 집이다.&lt;/p&gt;
&lt;h2&gt;22. 贈韓晦善 — 한회선에게 주다&lt;/h2&gt;
&lt;p&gt;꽃을 보며 만나고 또 꽃을 보며 헤어진다. 삼월 봄바람이 자리 위로 분다. 관문 밖 산천 천 리가 멀어 이제부터는 꿈속에서나 만날 수 있겠다.&lt;/p&gt;
&lt;h2&gt;23. 上伏日 憶宋士順 冕燮 — 초복날 송사순을 생각하다&lt;/h2&gt;
&lt;p&gt;늦게 맺은 인연이지만 같은 고을에 산 것이 다행이다. 요즘 보지 못한 하루가 가을처럼 길다. 두방산 앞에서 농사를 살핀 뒤에는 책 속에서 실용의 공부를 찾고 있으리라 생각한다.&lt;/p&gt;
&lt;h2&gt;24. 白雪朶… — 선사가 아끼던 백설매를 보고&lt;/h2&gt;
&lt;p&gt;선사가 사랑하던 흰 매화 한 화분이 제자에게 전해진 사연을 듣고 읊는다. 성전의 집에서 보던 꽃이 두곡의 책상 위에 놓였다. 곧은 마음은 바람에도 떨어지지 않고 성긴 그림자는 눈빛과 함께 밝다. 높은 선비의 덕을 닮은 꽃에 선생의 특별한 마음이 깃들었으니, 그때의 전수한 뜻을 듣고 나 또한 옷깃을 여민다.&lt;/p&gt;
&lt;h2&gt;25. 次鄭敬干 燉 韻 幷小序 — 정경간의 운에 차운하다&lt;/h2&gt;
&lt;p&gt;정경간은 스승을 섬기는 정성이 지극하여 떠돌고 곤궁한 때에도 후회하지 않았다. 주자의 탄신일마다 영정에 절하고 강학하던 뜻을 시로 읊은 것을 보고 같은 감회를 느껴 차운하였다.&lt;/p&gt;
&lt;p&gt;봄꽃과 가을달은 때마다 찾아오지만 금대의 가을 잣나무를 차마 바라보기 어렵다. 온갖 흐름이 미친 듯 흩어질 때 누가 도도한 물결의 지주가 될 것인가. 어둠이 밤처럼 가득하고 올빼미 같은 소리가 난무한다. 안연·증자의 지극한 즐거움을 말로만 칭송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며, 그대의 시를 읊고 나니 해마다 이날 눈물이 옷깃을 적신다.&lt;/p&gt;
&lt;h2&gt;26. 哭宋而吾 省三 — 송이오를 곡하다&lt;/h2&gt;
&lt;p&gt;고을의 뛰어난 선비로 모두가 흠모했고, 십 년을 함께 지내며 참마음을 보았다. 어버이 곁에서는 늘 온순했고 천 리 길에도 책 상자를 지고 학문을 구했다. 그런데 어머니 상을 지나치게 슬퍼하다 몸을 상해 세상을 떠났다. 이제 고향에 봄꽃이 피어도 시와 술을 함께할 사람이 누구인가.&lt;/p&gt;
&lt;h2&gt;27. 安丈 貞晦 見訪 — 안정회 어른이 찾아오다&lt;/h2&gt;
&lt;p&gt;지난밤 꿈속 신령한 기운이 내게 낙화를 쓸어 두라고 했다. 티 없는 흰 옥 같은 처사께서 푸른 지팡이를 짚고 서생의 문에 오셨다. 실제 공부의 단계와 선천의 근본을 묻고 싶었는데, 과연 작은 수레가 찾아오니 막혔던 생각이 눈 위 기러기 자국처럼 사라졌다.&lt;/p&gt;
&lt;h2&gt;28. 陪黃上庠 元龍 送安丈… — 황원룡과 함께 안장을 전송하며 삼소 고사를 말하다&lt;/h2&gt;
&lt;p&gt;도연명·육수정이 혜원을 전송하다 호계의 경계를 넘어 세 사람이 크게 웃었다는 고사를 떠올린다. 오늘 우리도 서로 마음을 알아주는 벗이 되어 세 번 웃는다. 봄이 저무는 봉황대에 푸른 노을이 쌓인다.&lt;/p&gt;
&lt;h2&gt;29. 登鳳凰臺 — 봉황대에 오르다&lt;/h2&gt;
&lt;p&gt;봉황이 떠난 때는 아득하고 돌에는 이끼가 끼어 글자가 반쯤 가렸다. 골짜기는 스스로 기이한 형세를 갖추고 누대에서는 안개에 기대지 않아도 시야가 트인다. 옛 은자를 좇고 싶지만 이백 같은 절창을 누가 이을까. 두 물줄기와 세 산에는 꽃과 풀이 가득하고, 솔바람이 비를 몰아오니 문득 쓸쓸하다.&lt;/p&gt;
&lt;h2&gt;30. 廣寒樓 — 광한루&lt;/h2&gt;
&lt;p&gt;백 척 높이 광한루가 우뚝하고 난간에는 바람, 머리 위에는 달이 가득하다. 난간을 두른 물은 은하에서 떨어지는 듯하고 처마에 머문 구름은 옥경에 가까운 듯하다. 이곳이 신선 세계임을 알겠고 칠석의 아름다운 만남도 떠오른다. 오늘 밤 시를 쓰니 별자리도 움직이는 듯하다.&lt;/p&gt;
&lt;h2&gt;31. 至日書懷 — 동짓날 회포를 쓰다&lt;/h2&gt;
&lt;p&gt;《주역》은 ‘복괘’를 말하고 한나라 역법은 태초력을 세웠다. 한 기틀이 묘하게 움직여 사계절이 남김없이 돌아간다. 선한 마음의 싹도 이처럼 분명하지만 내 뜻과 기운이 성기니 어찌하랴. 때를 느끼며 부끄러움이 많아 종일 초가 문을 닫는다.&lt;/p&gt;
&lt;h2&gt;32. 夢筆 — 붓을 꿈꾸다&lt;/h2&gt;
&lt;p&gt;중추절 꿈에 지극한 사람이 기이한 붓을 하나 주었다. 열 갈래가 한 몸을 이룬 듯하고 크고 작은 붓끝들이 서로 짝을 이루었다. 꿈에서 깬 뒤 옛사람들의 ‘몽필’ 고사를 생각하지만, 단지 시를 잘 짓는 작은 재주로 해석하기를 경계한다. 하나의 몸에서 여러 쓰임이 나오는 모습처럼 덕을 이루고 다양한 일에 적용하는 공부를 상징한다고 받아들이며, 안연의 지혜와 자공의 식견처럼 학문의 참뜻을 알아가기를 바란다.&lt;/p&gt;
&lt;h2&gt;33. 次韻 敬題進士族祖 錘祿 聾庵故壁 — 족조 농암의 옛 벽에 삼가 쓰다&lt;/h2&gt;
&lt;p&gt;선생은 떠났지만 그윽한 집은 남아 고상한 뜻을 지금도 말해 준다. 세상 소리에 휩쓸리지 않는 ‘귀먹음’에서 안신입명의 뜻을 취했으니, 그 법도가 후학의 동산에 전해질 만하다.&lt;/p&gt;
&lt;h2&gt;34. 留題宋希菴 時一 壁上 — 송희암의 벽에 남기다&lt;/h2&gt;
&lt;p&gt;젊은 시절 용전에서 맺은 의리가 깊고 학문의 연원도 오늘날 드물 만큼 분명하다. 꽃과 달을 만나면 봄옷을 입고, 풍상 속에서는 실다운 마음을 늙도록 지킨다. 세속의 일은 바둑 보듯 높이 초연하고 남은 책을 벗 삼는다. 염계의 뜻을 직접 보았는지 무릎 꿇고 참된 요체를 묻고 싶다.&lt;/p&gt;
&lt;h2&gt;35. 和上柳訥軒 鍾九 — 유눌헌에게 화답하여 올리다&lt;/h2&gt;
&lt;p&gt;말재주만 숭상하는 세상에서 나는 사십 년을 어둡게 살아왔다. 근래 그대의 아름다운 시를 보고 서재 이름의 뜻을 생각하니 정수리를 찌르는 금침보다 낫다. 행실을 닦는 데는 민첩함이 급하고, 인을 구하는 길은 번거롭지 않다. 주인의 깊은 도를 탄복한다.&lt;/p&gt;
&lt;h2&gt;36. 渡松倉津 — 송창진을 건너다&lt;/h2&gt;
&lt;p&gt;작은 돛배가 하늘 못을 나는 듯 떠간다. 용왕이 평안하게 해 주어 회오리바람도 없다. 전날 밤 파도가 사나웠다고 말하지 말라. 지금 내 몸은 거울처럼 맑은 물 한가운데 있다.&lt;/p&gt;
&lt;h2&gt;37. 辛巳四月 作蛟龍之遊 路中口占 — 신사년 4월 교룡산 유람길에서&lt;/h2&gt;
&lt;p&gt;멀리 봉황대 동쪽을 바라보니 푸른 산빛이 그림처럼 손가락 끝에 잡힌다. 좋은 날 함께 가자 불러 준 이웃 벗들에게 감사하며 긴 노래 한 곡 부르고 가벼운 바람을 탄다.&lt;/p&gt;
&lt;h2&gt;38. 蛟龍山吟 — 교룡산을 읊다&lt;/h2&gt;
&lt;p&gt;성 북쪽 외로운 산성이 하늘로 곧게 솟았다. 높은 곳에서는 신선 세계의 절도가 내려오는 듯하고 손바닥에는 이슬이 맺힌다. 사월의 푸른 나무 속 벗들과 세 봉우리에 올라 흰 구름 신선이 된 듯하다.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산에게 묻는다.&lt;/p&gt;
&lt;h2&gt;39. 次甲申韻 幷序 — 갑신운에 차운하다&lt;/h2&gt;
&lt;p&gt;한 집안에서 갑신년의 감회를 대대로 차운해 온 사연을 듣고 함께 시를 지었다. 해와 달이 흘러 다시 신년(申年)을 맞으니 왜 감회가 새로운가. 왕조의 흥망에는 일정함이 없지만 신하의 나아감과 물러남에는 의리가 있다. 중원의 오랜 오랑캐 먼지를 미워하고 동방에서 이어 온 황명에 대한 의리를 생각한다. 한 마음이 삼대에 전해졌으니 영릉의 송백을 바라보며 다시 슬퍼한다.&lt;/p&gt;
&lt;h2&gt;40. 通亭 二首 — 통정 두 수&lt;/h2&gt;
&lt;p&gt;가난한 살림에 할 일이 적은 꽃철, 네 방향이 트인 작은 정자에서 날마다 시를 읊는다. 재목이 성기고 처마도 짧지만 남북의 맑은 바람이 정신을 채우고 동서의 밝은 달이 술잔을 비춘다.&lt;/p&gt;
&lt;p&gt;통정에 앉아 산이 벽처럼 두르고 시내가 굽어 못을 이루는 모습을 본다. 붉은 꽃과 푸른 채소, 숲 골목의 봄 즐거움을 새들도 알고 있다.&lt;/p&gt;
&lt;h2&gt;41. 偶吟 — 우연히 읊다&lt;/h2&gt;
&lt;p&gt;흙탕길 속에서는 옥도 모서리를 잃어버리듯 세상이 어지럽다. 그러나 책 속에는 별처럼 밝은 성현의 글이 있고 마음속에는 옛 성인이 세우려던 큰 그림이 있다. 봄꽃이 피고 달빛이 집집마다 비치는 가운데 글자를 물으러 오는 마을 젊은이들을 맞으니 외로운 사람에게 두 겹의 기쁨이다.&lt;/p&gt;
&lt;h2&gt;42. 丙戌二月上丁 本府校中 行鄕飮禮 — 병술년 향음례&lt;/h2&gt;
&lt;p&gt;성인의 궁장 안에서 아침저녁 성현을 만나는 듯하다. 《시경》의 사슴 노래 같은 예를 되살리려 하지만 나는 노나라 종소리를 들은 바닷새처럼 어색할까 부끄럽다. 그래도 순박한 풍속을 돌이키려는 뜻을 품는다.&lt;/p&gt;
&lt;h2&gt;43. 族姪益三 益休 書來有詩 却和 三首 — 족질 익삼의 시에 화답하다&lt;/h2&gt;
&lt;p&gt;그리움이 깊은 때 누가 한 통 편지를 보내왔는가. 가을밤 달빛 아래 다 읽고 보니 예전의 어린 아몽이 아니라 의기가 우뚝 자란 모습이 보인다.&lt;/p&gt;
&lt;p&gt;오사카성 바닷물과 연연산 저녁 구름을 생각한다. 어느 날 창을 비껴 들고 동북의 어지러움을 평정하여 북과 피리 소리 속에 돌아오게 될까 하는 뜻을 노래한다.&lt;/p&gt;
&lt;p&gt;책을 덮고 낚싯대를 들고 바닷가로 간다. 가을 생선이 맛있다 하니 하나 보내 주어 굶주린 속도 좀 위로해 주지 않겠느냐고 익살스럽게 청한다.&lt;/p&gt;
&lt;h2&gt;44. 輓黃虞侯 — 황 우후를 애도하다&lt;/h2&gt;
&lt;p&gt;충무공의 높은 공훈은 해와 달처럼 밝고 당시 절도사의 깃발이 통영성을 통솔했다. 태평한 세상이라 그대가 옛 전공을 다시 세울 기회는 없었으나 뜻있는 선비는 ‘우후’라는 이름을 들으며 공연히 슬퍼한다.&lt;/p&gt;
&lt;h2&gt;45. 和騎牛詩 — 「소를 타다」 시에 화답하다&lt;/h2&gt;
&lt;p&gt;산속에서 밭 갈고 목축하는 사람처럼 문을 닫고 숨어 경전을 읽는다. 요순과 주공의 글을 읽으며 세상에 이런 도가 없다면 누구와 벗할지를 묻는다. 노자와 허무의 학문이 뒤섞여 후세에 폐단을 남긴 것을 비판하고, 귀를 씻은 사람처럼 마음을 씻어 참된 유학의 근원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소를 타는 늙은이가 세속의 갈림길을 벗어나 성왕의 길로 돌아가기를 바라며, 자신도 그 뒤를 따라 채찍을 잡고 도를 묻고 싶다고 읊는다.&lt;/p&gt;
&lt;h2&gt;46. 道中寄洪乃擧 淳翰 — 길에서 홍내거에게 부치다&lt;/h2&gt;
&lt;p&gt;눈처럼 흰 종이를 손에 가득 쥐니 양끝을 누런 끈이 감싸고 있다. 파초 잎처럼 펼치면 마음이 끝없이 이어지고, 홍애의 신선이 옛날부터 보내 온 편지처럼 느껴진다.&lt;/p&gt;
&lt;h2&gt;47. 和李丈振和 堉 — 이진화 어른에게 화답하다&lt;/h2&gt;
&lt;p&gt;영남과 호남이 막혀 만나기 어렵다. 꿈속에는 여러 영재가 얽혀 든다. 방호의 바람과 달 소식을 부지런히 물으며, 인간 세상에 또 다른 신선이 누구인지 생각한다.&lt;/p&gt;
&lt;h2&gt;48. 韓兌焉書來有詩 和送 — 한태언의 시에 화답하다&lt;/h2&gt;
&lt;p&gt;학이 깊은 못가에 우뚝 선 듯 타고난 자질이 맑고 빼어나다. 뱁새의 자잘한 지저귐을 어찌 배우겠는가. 앞날에는 사람을 놀라게 할 맑은 학 울음이 있으리라.&lt;/p&gt;
&lt;h2&gt;49. 十三君子詩 — 열세 군자에게&lt;/h2&gt;
&lt;p&gt;가뭄과 궁핍으로 죽음 가까이 이르렀을 때 열세 벗이 도움을 주어 다시 살아난 일을 읊는다. 밤낮으로 뒤척이며 은혜를 갚을 길을 생각한다. 뱀이 구슬을 물어 은혜를 갚고 물고기가 수명을 빌었다는 고사를 떠올리지만 자신은 그보다도 못하다고 자책한다. 꼬리를 흔들며 빌기도 전에 벗들이 작은 물 한 동이로 마른 물고기를 살리듯 구해 주었다. 넉넉해서가 아니라 어진 마음으로 도와준 것이 더욱 고맙다. 이 은혜에 보답할 길이 없으니 열세 군자의 수명이 산과 언덕처럼 오래기를 빈다.&lt;/p&gt;
&lt;h2&gt;50. 進士梁公行 — 양 진사를 노래하다&lt;/h2&gt;
&lt;p&gt;옛날 구양첨이 먼 서울에서 죽자 한유가 애사를 지었다는 고사를 꺼내며 양 진사의 죽음을 슬퍼한다. 아버지 때부터 이어진 교분과 고인의 문장·실행·효우를 회고한다. 처음 만났을 때 고인이 종이에 붉은 글 수십 자를 써 공부의 길을 가리켜 준 일이 정수리를 찌르는 침처럼 자신을 깨웠다고 한다. 성인의 학문은 안과 밖 어느 하나도 버리지 않는다는 가르침을 되새기며, 이제 저승이 아득해 다시 만날 수 없음을 탄식한다.&lt;/p&gt;
&lt;h2&gt;51. 輓黃進士 七首 — 황 진사를 애도하는 일곱 수&lt;/h2&gt;
&lt;p&gt;시단의 큰 솜씨로 무리에서 뛰어났고 여러 과거 명단에 이름이 이어져 모두 놀랐다. 새 푸른 도포와 관복을 입고 한낮 궁궐에서 임금을 뵙던 모습을 떠올린다.&lt;/p&gt;
&lt;p&gt;재주 있는 문인은 예부터 명성이 도리어 몸을 그르치기도 했다. 그러나 반 이랑 남짓한 집에서 연꽃처럼 홀로 맑게 선 그의 삶을 보라고 한다.&lt;/p&gt;
&lt;p&gt;《초사》를 수없이 읽던 그의 깊은 맛은 속인과 나눌 수 없었다. 후세에 양웅 같은 이가 알아줄지는 모르나 가슴속 비분과 감개는 온전히 남아 있다.&lt;/p&gt;
&lt;p&gt;봉황대 늙은 소나무 그늘에서 둥근 부채로 더위를 식히며 몇 번이나 지팡이를 따라 함께 놀았는지, 서로 바라보다 해가 지는 줄도 몰랐다.&lt;/p&gt;
&lt;p&gt;현포 서쪽에 거처를 잡고 가뭄에도 가을 벼가 들판에 가득했다. 한 시내의 바람과 달이 더욱 맑아 새 시의 격조를 높였다.&lt;/p&gt;
&lt;p&gt;병이 들어 시 짓기 어려워지며 세월이 갑자기 흘렀다. 이제 돌아보니 모두 꿈이 되었고 남산에는 다시 푸른 풀이 돋았다.&lt;/p&gt;
&lt;p&gt;빈 집에 하룻밤 가을바람이 불고 구름 같은 조객이 흰 버들을 보며 운다. 붓끝의 기이한 기운은 묻어 버릴 수 없으니 옥루에서도 큰 문장을 지으리라.&lt;/p&gt;
&lt;h2&gt;52. 次鳳鳴齋韻 — 봉명재 운에 차운하다&lt;/h2&gt;
&lt;p&gt;맑은 기운이 동쪽 대지를 떠받치고 봉우리들이 춤추듯 어울린다. 띠집은 새로 단장되어 소나무처럼 무성하고 잣나무 그림자가 대숲 사이로 어른거린다. 북쪽으로 삼각산을 바라보고 남쪽으로 여러 산봉우리가 통한다. 봉황의 울음 같은 상서로운 소리를 듣는 태평한 때, 우리 임금의 덕업이 융성함을 기뻐한다.&lt;/p&gt;
&lt;h2&gt;53. 鄭倫寬 琯鉉 意外歸覲 — 정윤관이 뜻밖에 귀향하자&lt;/h2&gt;
&lt;p&gt;마음 공부의 법을 천천히 말하며 두 해를 함께했으나 백 년의 인연을 기약했다. 먼지 없는 책상에서 먹을 갈고 눈 내린 차가운 창가에서 등불을 함께 밝혔다. 접착제가 천 길을 붙이는 것처럼 뜻을 굳게 지키는 일은 가능하지만, 큰불을 한 잔 물로 끄기는 어렵다. 왜 그리 급히 떠나는지 묻자 흰 구름이 예부터 지금까지의 부모 생각을 일으킨다.&lt;/p&gt;
&lt;h2&gt;54. 蛟龍山 — 교룡산&lt;/h2&gt;
&lt;p&gt;외로운 산성의 아름다운 경치가 사람을 부른다. 평야와 읍내 누각까지 시야가 끝없이 열린다. 불전과 장대에는 한가한 세월이 흐르고 바위꽃과 시냇가 나무에는 저절로 봄가을이 간다. 이 속에서 인자와 지자의 즐거움을 안다면 곁사람은 단순한 시인의 유람이라고 말하지 말라.&lt;/p&gt;
&lt;h2&gt;55. 松廣寺講會席上韻 — 송광사 강회 자리에서&lt;/h2&gt;
&lt;p&gt;조계산에서 잠을 깨니 해가 이미 동쪽에 올랐다. 네 고을의 선비들이 한 누각에 모였다. 젊은 날 함께 공부하자는 약속을 지키는 그대들을 보며 믿음이 더해지고, 나는 점점 책 공부가 성기어짐을 부끄러워한다. 골짜기 물소리는 밤비에 커지고 천 숲의 꽃향기는 하늘 바람에 짙다. 이 유람을 한갓 놀이와 같다고 해서는 안 된다.&lt;/p&gt;
&lt;h2&gt;56. 春分日華嚴寺 看老人星 — 춘분날 화엄사에서 노인성을 보다&lt;/h2&gt;
&lt;p&gt;화엄사를 찾아온 것도 늦었고 내가 방장산에 드나든 지도 이미 여러 해다. 붉은 연꽃은 여전히 형상을 드러내고 푸른 물은 끝없이 흐른다. 남극을 향한 누대에서 노인성을 바라보고, 서쪽 봉우리를 마주한 문에서 달과 함께 잠든다. 구름 밖에 청학이 있으리라 생각하니 신선처럼 훌쩍 날아오르고 싶다.&lt;/p&gt;
&lt;h2&gt;57. 丁公藤杖 — 정공등 지팡이&lt;/h2&gt;
&lt;p&gt;지리산의 신령한 덩굴로 만든 지팡이를 얻고 수많은 신선 고사와 약초 전설을 끌어와 길게 노래한다. 정공등은 남향 비탈에서 자라고 오래된 의서에서는 노쇠를 보하고 허리와 무릎을 강하게 한다고 전한다. 시인은 서복·오강·안우산 등의 고사를 이어 붙이며 이 지팡이가 단순히 늙은 몸을 받치는 도구를 넘어, 성현의 도를 따르는 사람의 ‘험한 길을 붙들어 주는 것’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진짜 어려운 것은 지팡이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아니라 사람 마음과 세도의 어둠이라며, 신령한 지팡이를 두고도 아무 능력이 없는 자신을 탄식한다.&lt;/p&gt;
&lt;h2&gt;58. 再得丁公藤 金秀才琪潾所贈 — 정공등을 다시 얻다&lt;/h2&gt;
&lt;p&gt;신령한 산의 비와 이슬을 몇 번의 봄 동안 받았는가. 옥 같은 나무가 빼어나게 자라 무리보다 뛰어나다. 만나자 웃으며 금란지교를 맺으니 높은 풍모를 힘껏 도와주는 옛 벗 하나를 얻은 듯하다.&lt;/p&gt;
&lt;h2&gt;59. 代靑藜下怨語二絶 — 청려장을 대신해 원망하다&lt;/h2&gt;
&lt;p&gt;빈 산의 초목으로 헛되이 세월만 먹었으니 죽도록 적막하여 누가 이름을 전해 주겠는가. 오래 산다는 효험만을 정공등에게 기대는 것은 미혹이다. 옛부터 향기를 남긴 것은 오직 어진 이를 본받은 사람이다.&lt;/p&gt;
&lt;p&gt;천록각 화재 때부터 선비들이 내 도움을 입었다고 청려장이 자랑한다. 그런데 오늘 봉황대의 차가운 달빛 아래서는 버림받은 아내처럼 제 신세를 한탄한다.&lt;/p&gt;
&lt;h2&gt;60. 慰靑藜 — 청려장을 위로하다&lt;/h2&gt;
&lt;p&gt;농부는 밭을 탐하고 장사꾼은 돈을 탐하듯 사람마다 익힌 솜씨가 다르다. 내가 무정해서 너를 버린 것이 아니라 전부터 네 효용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lt;/p&gt;
&lt;p&gt;예전에 네 쓰임을 제대로 알았더라면 형제처럼 친하고 현인처럼 공경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가슴속에는 한 글자도 들어갈 자리가 없고 가난한 집에는 벌써 저녁이 깊었다.&lt;/p&gt;
&lt;h2&gt;61. 三加日 示大休 — 관례 날 대휴에게 보이다&lt;/h2&gt;
&lt;p&gt;떠도는 삶을 이어 오다 고향 땅에서 아들의 관례를 치르니 감회가 깊다. 전해 온 옛 학문은 한 삼태기씩 쌓아 산을 이루듯 해야 하고, 새로 받는 복은 샘물이 흘러 강이 되듯 시작되어야 한다. 이제 활과 화살을 차는 성인의 책임을 생각하고 집안의 대들보가 되어 향기를 전하라. 밤낮으로 이 뜻을 잊지 않는다면 객지의 온갖 시름을 너로 인해 잊겠다.&lt;/p&gt;
&lt;h2&gt;62. 拜柳侍中 升茂 墓 — 유승무 시중의 묘에 절하다&lt;/h2&gt;
&lt;p&gt;유 상공의 맑은 풍모는 백세를 씻어 주고 탐욕한 이를 청렴하게, 나약한 이를 굳세게 한다. 선영의 땅에서 일찍 큰 인물이 나와 고려 때 현업을 빛냈다. 오랫동안 마음에 두었던 성묘를 오늘 이루고, 누가 비석 머리에 연릉 계찰과 같은 추모의 글을 새길지 생각한다.&lt;/p&gt;
&lt;h2&gt;63. 見張遜卿 鎭學 韻 却和之 七首 — 장진학의 시를 보고 일곱 수로 화답하다&lt;/h2&gt;
&lt;p&gt;문을 닫아 손님맞이를 끊고 산이 비어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날마다 《춘추》를 공부하여 길이 공자의 신하가 되겠다.&lt;/p&gt;
&lt;p&gt;이제부터 술 마시는 법이나 배워 유령에게 술의 덕을 묻고, 종일 거나하게 잠들어 득실로 정신을 괴롭히지 말까 한다.&lt;/p&gt;
&lt;p&gt;사람들이 내게 예전과 달라진 솜씨가 무엇인지 묻는다. 정자에는 옛 풍경 그대로 밤마다 달 한 바퀴가 뜰 뿐이다.&lt;/p&gt;
&lt;p&gt;고개 숙여 한숨을 쉬지만 속마음을 어찌 다 펼칠까. 천지가 넓다 해도 일곱 자 몸 하나 둘 곳이 어렵다.&lt;/p&gt;
&lt;p&gt;노중련이 떠난 뒤 탁월한 자취는 오래전 일이 되었다. 동해에 몸 던질 곳조차 없으니 그 영혼만 그리워한다.&lt;/p&gt;
&lt;p&gt;하늘을 가린 구름은 검고 비와 바람이 잇따른다. 오래 가난하게 살다 보니 해가 다 가도록 제대로 쓸 두건도 없음을 스스로 웃는다.&lt;/p&gt;
&lt;p&gt;장생은 옛 도에 뜻을 두어 젊은 기운이 따뜻하다. 깊은 옷소매에서 시축을 꺼내 일곱 수의 맑고 새로운 시를 토해 냈다.&lt;/p&gt;
&lt;h2&gt;64. 漾碧亭 — 양벽정&lt;/h2&gt;
&lt;p&gt;벽에는 세 현인의 이름이 있고 배에는 두 선비가 앉았다. 밤이 오자 강물 위 달이 옛사람과 오늘 사람을 똑같이 비춘다.&lt;/p&gt;
&lt;h2&gt;65. 和金伯朱 在煕 舟字詩 — 김재희의 ‘주(舟)’자 시에 화답하다&lt;/h2&gt;
&lt;p&gt;예나 지금이나 물은 도도히 흐르고 천지 사이 사람은 한 잎 배와 같다. 나루를 물을 바른 길은 있고 노 젓는 노래의 묘한 소리가 남는다. 하늘 가득한 달을 배에 싣고 만 리 바람에 맡겨 간다. 그대를 보내며 건너갈 곳을 삼가라고 당부한다. 급한 물결은 아래로 흐르기 쉽다.&lt;/p&gt;
&lt;h2&gt;66. 梅花 — 매화&lt;/h2&gt;
&lt;p&gt;집 동쪽 밭가에 외로운 매화 한 그루가 서 있다. 봄비가 밤새 지나자 만 점 꽃이 피었다. 주인 마음에 슬픔이 있는 줄 모르는지 맑은 향기는 예전처럼 문 안으로 들어온다.&lt;/p&gt;
&lt;h2&gt;67. 梅花答 — 매화가 답하다&lt;/h2&gt;
&lt;p&gt;이 세상에서 나보다 그대를 더 잘 아는 것이 누구겠는가. 형제간 즐거움을 볼 때마다 그대 얼굴에 웃음이 피었다. 연못 가득 푸른 풀이 어느새 꿈이 되었으니, 나는 일부러 보슬비 속에 눈물을 띠고 찾아왔다.&lt;/p&gt;
&lt;h2&gt;68. 謝梅花 — 매화에게 사과하다&lt;/h2&gt;
&lt;p&gt;육안뿐인 농산이 너 매화를 저버렸다. 시주머니를 한 번도 너를 위해 열지 않았다. 십 년을 함께하고도 처음 보는 얼굴처럼 대했으니 헛되이 네 향기로운 넋만 오가게 했다.&lt;/p&gt;
&lt;h2&gt;69. 梅花答 — 매화가 답하다&lt;/h2&gt;
&lt;p&gt;옛부터 시인들은 매화를 즐겨 읊어 향기로운 시구가 가지마다 꽃핀 듯했다. 그런데 그대는 붓이 있어도 모두 다른 곳에만 달리니 세상 사람들의 말이 많아진 것이 이상할 것도 없다.&lt;/p&gt;
&lt;h2&gt;70. 謝梅花 — 다시 매화에게&lt;/h2&gt;
&lt;p&gt;담박한 생애로 사는 나도 매화와 비슷하다. 봄바람 속에 서로의 냄새를 늦게야 알아보았다. 달 지고 별 기우는 새벽에 꼿꼿이 서 있는 너를 보니 강호의 막역한 벗이 마음속으로 찾아온다.&lt;/p&gt;
&lt;h2&gt;71. 梅花答 — 매화가 답하다&lt;/h2&gt;
&lt;p&gt;열매는 버리고 꽃만 탐하는 것은 속된 사람이 보는 매화다. 바라건대 그대는 꽃이 핀 뒤 반드시 열매를 맺어라. 언젠가 은나라 솥에서 매실로 국 맛을 조절하던 고사처럼 세상에 쓰일 날이 오면 사신 수레가 멀지 않아 찾아오리라.&lt;/p&gt;
&lt;h2&gt;72. 偶吟呈諸君 三首 — 우연히 읊어 여러 벗에게&lt;/h2&gt;
&lt;p&gt;천하가 밤이 되려 해 태양빛이 희미하다. 하늘 뜻이 아득하지만 그대로 둘 수 없다. 그대들과 함께 해가 지는 우연의 못으로 들어가 금빛 해를 받쳐 올려 다시 세상에 빛내고 싶다.&lt;/p&gt;
&lt;p&gt;이 공부는 어렵지 않으면서 또한 쉽지 않다. 천리와 인욕이라는 두 갈래 길이 열린다. 마음을 가라앉혀 스스로 방향을 얻으면 여러 경전이 해처럼 환하게 길을 비춘다.&lt;/p&gt;
&lt;p&gt;길은 만 리나 멀고 짐은 천 근이나 무겁다. 백 년 인생도 문틈 사이를 지나가는 말처럼 빠르다. 몸을 이끌고 가다 중도에서 멈춘 수레바퀴 자국을 밟지 말고 한 치 한 분의 시간도 아껴라.&lt;/p&gt;
&lt;h2&gt;73. 入山翌日 答黃兄卓汝 瑬 — 입산 이튿날 황탁여에게 답하다&lt;/h2&gt;
&lt;p&gt;방호산에 한 번 들어오니 꿈조차 기이하다. 신령한 풀이 곳곳에 있어 굶주림도 잊는다. 흐르는 물과 뜬구름을 실컷 보고 돌아와 술을 마시고 다시 시를 쓴다.&lt;/p&gt;
&lt;h2&gt;74. 路中憶房百行 孝源 韻次之 — 길에서 방효원을 생각하며&lt;/h2&gt;
&lt;p&gt;봄새 소리 속에 보리가 익을 때가 가까워지고 좋은 봄빛은 곳곳에서 사람을 붙들어 둔다. 먼 앞날 생각 없는 이 어리석은 사람은 마음에 즐거움을 만나자마자 근심을 잊고 만다.&lt;/p&gt;
&lt;h2&gt;75. 尹平叔…課歲相顧 — 여러 벗이 연말에 찾아와&lt;/h2&gt;
&lt;p&gt;이틀만 지나면 새해다. 한 해를 보내기도 어려웠는데 또 한 해가 그러하다. 먼길에 어찌 흰 눈을 헤치고 찾아왔는가. 참된 공부의 차례를 깊은 못처럼 이야기한다. 술독이 빈 것이 부끄럽지만 마주 앉아 여러 일을 전한다. 흥이 나 작은 배를 타고 찾아가고 싶으니 복사꽃이 다 붉어져 물 위에 하늘이 뜨는 때를 그린다.&lt;/p&gt;
&lt;h2&gt;76. 次諸益韻咏懷 — 여러 벗의 운에 차운하여 회포를 읊다&lt;/h2&gt;
&lt;p&gt;문을 닫으면 밖의 흐림과 맑음을 말하지 않는다. 때때로 찾아오는 벗들이 고요한 삶을 흔든다. 숲 아래에서는 주희를 뒤따르는 사람이 있지만 세상에는 황명의 의리를 논할 곳이 없다. 산골 구름은 여전히 그윽하고 뜰의 나무는 자라 늦은 소리를 들려준다. 시 짓는 병으로 종일 흰머리를 어루만지며 젊음이 참으로 좋은 정신의 때였음을 느낀다.&lt;/p&gt;
&lt;h2&gt;77. 樹木二十三韻 贈族姪柏休 — 나무 스물세 운, 족질 백휴에게&lt;/h2&gt;
&lt;p&gt;집안의 계보와 선조들을 한 그루 큰 나무에 비유한 장편이다. 고려 말 고령에 뿌리내린 시조부터 문을 닫고 절의를 지킨 선조, 임진왜란에 공을 세운 이들, 벼슬길에서 간언한 후손들까지 가지가 뻗듯 이어진 가문의 역사를 노래한다. 특히 높은 벼슬과 과거 급제 자체보다 세상이 어두울 때 절의를 지키고, 태평한 때 충직하게 간언하며, 때가 되면 용감하게 물러난 것을 ‘세한에도 변하지 않는 나무’의 덕으로 본다. 끝에서는 자신은 그 나무를 그려낼 화공도 치료할 의원도 아니라며, 찬바람에 낙엽 지는 현실 앞에서 후손에게 뿌리를 지키라고 당부한다.&lt;/p&gt;
&lt;h2&gt;78. 銀杏爲火所焚嘆 — 은행나무가 불타 탄식하다&lt;/h2&gt;
&lt;p&gt;죽곡에 십칠 년 머물며 마을 앞 천 년 은행나무를 늘 공경해 왔다. 비바람과 우레에도 끄떡없던 큰 나무가 어느 날 불에 타자 마을 노인들이 달려와도 속수무책이었다. 그늘과 열매가 모두 옛일이 되고 마을 풍경이 쓸쓸해졌다. 시인은 작은 나무의 재난에서도 나라와 세상의 큰 흥망을 떠올린다. 사소한 놀이와 방심이 끝내 나라의 화로 번질 수 있음을 옛 송나라 고사에 빗대며, 벗의 조문을 받은 뒤 술 취해 이 시를 쓴다.&lt;/p&gt;
&lt;h2&gt;79. 薰臍 — 배꼽 뜸&lt;/h2&gt;
&lt;p&gt;높은 산에서 난 쑥잎에는 신묘한 효험이 있다고 하여 소금과 재료를 마련해 배꼽에 뜸을 뜬다. 찾아온 손님은 밥도 잘 먹고 얼굴빛도 같은데 왜 번거로운 치료를 하느냐고 묻는다. 나는 겉몸은 멀쩡해도 기혈이 충실하지 않고 사방에는 외사가 오랑캐처럼 둘러싸였으니, 작은 구멍이 큰 둑을 무너뜨리기 전에 막아야 한다고 답한다. 기해혈을 잘 보양하면 뿌리를 굳게 할 수 있다는 옛 학자의 말을 믿어 미리 몸을 다스리는 뜻을 읊는다.&lt;/p&gt;
&lt;h2&gt;80. 次黃正宥 炳中 韻 — 황정유의 운에 차운하다&lt;/h2&gt;
&lt;p&gt;바닷가 고향 소식이 산기슭까지 이르렀다. 답장을 쓰려다 붓을 멈추고 하늘만 본다. 세상의 치란을 잊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마음속 맑고 흐림은 강물에 맡긴다. 붉은 매화와 봄은 또 지나가고 단약을 굽는 불은 몇 해나 이어질까. 방호산 가랑비 뒤 서로 바삐 길을 떠나던 모습을 떠올린다.&lt;/p&gt;
&lt;h2&gt;81. 送尹光馨 厚善 — 윤광형을 보내며&lt;/h2&gt;
&lt;p&gt;책상에 기대 고개 숙여 《서경》의 ‘서리’ 같은 망국의 슬픔을 운다. 국화술이 익어 취할 때가 되었지만 큰 뜻은 허망해지고 뜰의 나무를 마주해서 잠시 마음을 달랜다. 바람 부는 길에는 사람이 없고 한 등불 아래 그대와 밤을 오래 보낸다. 형이 내 가난한 집 사정을 묻거든 그저 이 소탈하고 미친 사람의 모습을 대강 전해 달라.&lt;/p&gt;
&lt;h2&gt;82. 同趙君習…入方丈山 — 젊은 벗들과 방장산에 들다&lt;/h2&gt;
&lt;p&gt;낙화와 흐르는 물의 강남 같은 봄날, 두 젊은 벗과 함께 간다. 신선 세계를 바다 밖에서 찾을 필요 없이 기이한 유람은 봉성 곁에 있다. 최치원의 문장은 떠나고 푸른 산만 오래되었고, 남명 같은 처사가 다시 온 듯 흰 학이 잠든다. 안개와 노을을 손에 잡은 듯 웃지만 사흘 동안 시주머니는 아직 비어 있다.&lt;/p&gt;
&lt;h2&gt;83. 洗耳嵒 — 세이암&lt;/h2&gt;
&lt;p&gt;세이암 곁에서 나도 귀를 씻는다. 고운 최치원의 이런 뜻이 내 스승이다. 물가에서 이름을 바위에 새기는 사람을 보며 웃는다. 허유의 벗 소부는 어찌 후세의 이름을 구했겠는가.&lt;/p&gt;
&lt;h2&gt;84. 白雲山 — 백운산&lt;/h2&gt;
&lt;p&gt;동국에는 이름난 산이 많고 남쪽 하늘에는 또 백운산이 있다. 사월에 처음 찾아와 천 년 만에 그대를 처음 알게 된 듯하다. 서로 바라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아 해가 질 때까지 빈 절문에 앉아 있다.&lt;/p&gt;
&lt;h2&gt;85. 海橋鄭氏書室 — 해교 정씨 서실&lt;/h2&gt;
&lt;p&gt;저녁에 다리 위 집을 찾아왔다. 내 거친 노래가 어찌 그대의 서실에 남길 만하겠는가. 새옹의 말과 교인의 물고기 고사를 떠올리며 세상 득실을 웃는다. 땅에는 푸른 산이 가득하고 하늘에 뜬 바다는 끝이 없다. 만 리 바람을 타고 허둥대던 사람은 이제야 도연명이 자기 초가를 사랑한 뜻을 알겠다.&lt;/p&gt;
&lt;h2&gt;86. 山行 — 산길&lt;/h2&gt;
&lt;p&gt;나쁜 안개가 하늘을 이어 검게 덮고 한낮에도 해가 희미하다. 그러나 두 눈은 촛불처럼 밝으니 걸어가는 길을 잃지 않는다.&lt;/p&gt;
&lt;h2&gt;87. 和申希仁 鉉濟 — 신희인에게 화답하다&lt;/h2&gt;
&lt;p&gt;겉으로 환한 것과 속으로 은은히 빛나는 것을 분별할 줄 알아야 대장부가 비로소 어진 사람이 된다. 꽃 가득한 숲의 봄도 늙어 가고 한 침상에서 풍우를 들으며 잠 못 이룬다. 그대 집안의 전통을 욕되게 하지 말고, 자하가 말한 유자의 길처럼 성문에 이르는 몇 마디 가르침을 온전히 따르라고 권한다.&lt;/p&gt;
&lt;h2&gt;88. 外舍落成日 書懷呈諸勝友求和 — 외사가 완공된 날&lt;/h2&gt;
&lt;p&gt;평생 바라던 큰 집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듯 기쁘다. 천하의 선비들을 모두 불러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다. 앞사람이 남긴 도서와 태고의 거문고 노래를 가까이 두었다. 큰 계획은 물처럼 흘러가 버렸지만 작은 거처는 산속에 가지런히 자리 잡았다. 첫 모임에서 ‘명(明)과 성(誠)’의 뜻을 읊으며 벗들에게 화답을 구한다.&lt;/p&gt;
&lt;h2&gt;89. 雲峯碑殿 — 운봉 비전&lt;/h2&gt;
&lt;p&gt;오래된 나무는 하늘을 찌르고 맑은 냇물은 땅 가득 흐른다. 흰 심의를 입고 찾아오니 해 질 무렵 뜻이 아득하고 깊다.&lt;/p&gt;
&lt;h2&gt;90. 琴五首寄房百行 — 방백행에게 거문고 다섯 수를 보내다&lt;/h2&gt;
&lt;p&gt;벗이 칠현금을 잘 꾸며 보내 주었다. 고산유수처럼 마음을 알아주는 뜻이 담겼지만 먼지 묻은 나는 삼 년 동안 벽에 걸어 두고 소리를 내지 못했다.&lt;/p&gt;
&lt;p&gt;술이 있으면 책을 멈추고 거문고를 오래 바라본다. 옛 악보를 빌려 보아도 마음만 많다.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이 속절없이 지나가니 사람들은 농산이 음악을 모른다고 말한다.&lt;/p&gt;
&lt;p&gt;상중의 흰 관을 쓴 몸으로 검은 거문고를 타는 것이 맞겠는가. 마음의 경계를 쇠문처럼 굳게 지켜 남이 듣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조용히 남은 소리를 찾을 곳도 없다.&lt;/p&gt;
&lt;p&gt;세상이 나를 쓰지 않는 것은 내가 거문고를 쓰지 않는 것과 같다. 몇 해를 서로 두고 지내며 둘 다 마음에 걸렸다. 달 밝고 긴 밤 초당이 고요해도 보배 상자에는 만고의 소리가 감추어져 있다.&lt;/p&gt;
&lt;p&gt;후세의 차갑고 맑은 소리만으로 어찌 참된 거문고라 하겠는가. 숲과 들에 살며 마음이 상할 때 생각은 요임금의 조정으로 날아간다. 위아래가 화목하여 모두 좋은 소리를 내던 세상을 그린다.&lt;/p&gt;
&lt;h2&gt;91. 外舍諸君共作惜別詩… — 외사의 여러 제자와 이별하며&lt;/h2&gt;
&lt;p&gt;벗들이 책 상자를 메고 멀리 찾아와 석 달 동안 공부에 빠져 고기 맛도 잊었다. 흰 물속에 숨은 진주 같은 인재들을 아끼면서도, 자신은 쓸모없는 나무처럼 청산에 묻혀 있음을 부끄러워한다. 나라를 걱정하면 늘 요순 시대로 돌아가기를 빌고, 학문을 논하면 낙양과 건양의 정통으로 돌아가자고 한다. 별자리 삼과 상처럼 서로 멀어질 이별이 참으로 아쉽고 달 아래 홀로 남을 밤이 견디기 어렵다.&lt;/p&gt;
&lt;h2&gt;92. 四十九歲戊戌 次李白尋陽紫極宮感秋詩 — 마흔아홉 살에 이백의 시에 차운하다&lt;/h2&gt;
&lt;p&gt;이백 같은 천재도 마흔아홉에 지난날을 후회했다. 그 진실한 말이 손에 잡힐 듯하다. 천 년 사이에 나이 오십에 허물을 알았던 거원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흰 이슬이 서리가 되는 밤 잠들지 못하며 공문 삼천 제자를 생각한다. 자공과 자하 같은 이들조차 공부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주역》에서 길을 잃고도 돌아오는 ‘복’을 점치듯, 옛 거울을 닦으며 앞 수레가 뒤집힌 일을 잊지 않고 맑은 창 아래 육경을 숙독하고자 한다.&lt;/p&gt;
&lt;h2&gt;93. 寄柳源汝 根善 — 유원여에게 부치다&lt;/h2&gt;
&lt;p&gt;깊은 밤 초당에서 거문고 소리가 난다. 그 곡 안의 마음을 누가 알까. 산과 바다가 흔들리고 별까지 움직이는 듯한 어지러운 세상이다. 옛 요순의 정치가 가능했던 까닭을 다시 묻는다. 우·직과 안연은 처지가 달라도 같은 도를 지켰다. 세상이 근본에서 어긋나면 흐름 전체가 달라진다. 《춘추》의 대일통을 언제 제대로 읽을까 생각하면 공자가 기린을 보고 울었다는 때처럼 눈물이 난다. 그 울림이 그대 유군을 불러오기를 바라며, 새로 장정한 주자의 글을 방 가득 두고 함께 힘써 읽자고 청한다.&lt;/p&gt;
&lt;h2&gt;94. 宋君義集 敬淑 自華陽洞歸… 三首 — 송경숙이 화양동에서 숭정 어필을 가져와 준 데 감사하다&lt;/h2&gt;
&lt;p&gt;옛 명나라의 찬란한 봄은 삼백 년 전 일이 되고 붉고 누런 빛은 쓸쓸한 연기 속에 잠겼다. 그래도 한 조각 밝은 달 같은 어필에는 변치 않는 빛이 있어 한밤중에도 성현의 근원을 찾게 한다.&lt;/p&gt;
&lt;p&gt;화양동의 하늘에서 돌아온 일이 우연이 아니다. 신묘한 필적은 조화에 참여한 듯하고, 만세의 사람들은 한결같은 절의를 말하리라.&lt;/p&gt;
&lt;p&gt;책상에는 《춘추》가 있고 손에는 용천검을 잡은 듯하다. 중원을 생각하면 오장이 탄다. 그대를 만나 다시 ‘아아!’ 하고 눈물을 흘리지만 나무는 짙푸르고 풀은 저절로 무성할 뿐이다.&lt;/p&gt;
&lt;h2&gt;95. 贈或人 八首 — 어떤 이에게 주다&lt;/h2&gt;
&lt;p&gt;어제는 갖옷을 입고 눈길을 갔는데 어느새 봄꽃이 성에 가득하다. 바다에 이른 큰 물결은 거슬러 돌아가기 어려우니 황급히 흐르는 세월이 너무 무정하다.&lt;/p&gt;
&lt;p&gt;나도 젊은 날 책 상자를 메고 길을 떠날 때에는 남보다 앞서려는 기상이 성처럼 높았다. 그러나 만사가 허사가 되고 흰머리만 늘어 속이 탄다.&lt;/p&gt;
&lt;p&gt;그대가 이른 새벽 수레를 몰아 멀리 떠나는 것을 본다. 집 안에는 아름다운 사람이 있고 이름난 꽃을 비단 위에 더하려는 듯하니, 서로 아끼고 돕는 것도 인간의 상정이다.&lt;/p&gt;
&lt;p&gt;문밖에는 길이 종횡으로 뻗어 있는데 한 채찍으로 마땅히 서울을 향해야 한다. 그런데 밝은 대낮 갈림길에서 어찌 미혹하는가. 완적이 갈림길에서 통곡했다는 심정을 알겠다.&lt;/p&gt;
&lt;p&gt;가장 아까운 것은 길 절반에서 걸음을 멈추는 일이다. 태괘에도 성벽이 무너질 경계가 있다. 시장 한복판에서 매를 맞는 것보다 뜻을 잃는 부끄러움이 크다는 옛 고사의 뜻을 새긴다.&lt;/p&gt;
&lt;p&gt;《대학》의 삼강령과 팔조목을 행실의 기강으로 삼아, 노나라에서 전해 온 성학의 자취를 한 걸음씩 밟는다면 평생 처음 세운 뜻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lt;/p&gt;
&lt;p&gt;아침에는 태행산 아래를 걷고 저녁에는 먼 백제성에 묵는다고 해도 만 리 주유를 멀다 하지 않는다. 봉황이 날고 용이 뛰듯 큰 뜻은 모두 마음가짐에 달렸다.&lt;/p&gt;
&lt;p&gt;깊은 못 위 외나무다리를 지나듯 끝까지 조심하고 또 조심하여 마음의 성을 지켜라. 삼백 예와 삼천 위의를 하나같이 따르면 밝게 드러나는 천리가 곧 사람의 참된 정이다.&lt;/p&gt;
&lt;hr /&gt;
&lt;h2&gt;권1 검수 메모&lt;/h2&gt;
&lt;ul&gt;
&lt;li&gt;시어와 전고가 매우 밀집된 작품, 특히 **〈三憂〉, 〈和騎牛詩〉, 〈進士梁公行〉, 〈丁公藤杖〉, 〈樹木二十三韻〉**은 2차 교감 대상으로 표시한다.&lt;/li&gt;
&lt;li&gt;원문에 이체자·결자(▣)·후대 전사 흔적이 있어 인명 및 일부 고유명사는 확정하지 않았다.&lt;/li&gt;
&lt;li&gt;‘현대어 번역’은 우선 전체 의미를 읽을 수 있게 하는 초벌본이며, 후속 단계에서 행별 직역과 주석을 추가한다.&lt;/li&gt;
&lt;/ul&gt;
</content:encoded></item><item><title>농산집 (農山集)</title><link>https://korclassic.pma.kr/posts/nongsanjip/</link><guid isPermaLink="true">https://korclassic.pma.kr/posts/nongsanjip/</guid><description>농산 신득구의 12권 5책 문집을 권별로 옮기는 AI 초벌 번역 프로젝트.</description><pubDate>Tue, 15 Sep 2026 00:00:00 GMT</pubDate><content:encoded>&lt;blockquote&gt;
&lt;p&gt;&lt;strong&gt;번역 상태: 진행 중 · AI 초벌 번역 / 인문학 검수 전&lt;/strong&gt;&lt;/p&gt;
&lt;/blockquote&gt;
&lt;h2&gt;자료 정보&lt;/h2&gt;
&lt;ul&gt;
&lt;li&gt;&lt;strong&gt;서명:&lt;/strong&gt; 《농산집(農山集)》 / 공개 원문 표기 《農山先生文集》&lt;/li&gt;
&lt;li&gt;&lt;strong&gt;저자:&lt;/strong&gt; 신득구(申得求, 1850~1900)&lt;/li&gt;
&lt;li&gt;&lt;strong&gt;구성:&lt;/strong&gt; 12권 5책&lt;/li&gt;
&lt;li&gt;&lt;strong&gt;간행:&lt;/strong&gt; 저자 사후 문인들이 가장초고를 정리하여 간행&lt;/li&gt;
&lt;li&gt;&lt;strong&gt;주요 원문 출처:&lt;/strong&gt; 한국고전번역원 / 공공데이터포털 「한국고전번역원_한국문집총간_농산집_20211213」&lt;/li&gt;
&lt;li&gt;&lt;strong&gt;원문 데이터 이용조건:&lt;/strong&gt; 이용허락범위 제한 없음&lt;/li&gt;
&lt;li&gt;&lt;strong&gt;대조 원문:&lt;/strong&gt; 위키문헌 《農山先生文集 (申得求)》 권1~12&lt;/li&gt;
&lt;/ul&gt;
&lt;h2&gt;번역 현황&lt;/h2&gt;
&lt;table&gt;
&lt;thead&gt;
&lt;tr&gt;
&lt;th&gt;권&lt;/th&gt;
&lt;th&gt;주요 체재&lt;/th&gt;
&lt;th&gt;상태&lt;/th&gt;
&lt;/tr&gt;
&lt;/thead&gt;
&lt;tbody&gt;
&lt;tr&gt;
&lt;td&gt;&lt;a href=&quot;/posts/nongsanjip-01/&quot;&gt;권1&lt;/a&gt;&lt;/td&gt;
&lt;td&gt;시(詩) 95제&lt;/td&gt;
&lt;td&gt;&lt;strong&gt;AI 초벌 번역 완료&lt;/strong&gt;&lt;/td&gt;
&lt;/tr&gt;
&lt;tr&gt;
&lt;td&gt;권2&lt;/td&gt;
&lt;td&gt;서(書)&lt;/td&gt;
&lt;td&gt;원문 분할/번역 진행&lt;/td&gt;
&lt;/tr&gt;
&lt;tr&gt;
&lt;td&gt;권3&lt;/td&gt;
&lt;td&gt;서(書)&lt;/td&gt;
&lt;td&gt;원문 분할/번역 진행&lt;/td&gt;
&lt;/tr&gt;
&lt;tr&gt;
&lt;td&gt;권4&lt;/td&gt;
&lt;td&gt;서(書)&lt;/td&gt;
&lt;td&gt;원문 분할/번역 진행&lt;/td&gt;
&lt;/tr&gt;
&lt;tr&gt;
&lt;td&gt;권5&lt;/td&gt;
&lt;td&gt;잡저(雜著)&lt;/td&gt;
&lt;td&gt;원문 분할/번역 진행&lt;/td&gt;
&lt;/tr&gt;
&lt;tr&gt;
&lt;td&gt;권6&lt;/td&gt;
&lt;td&gt;서(序) 등&lt;/td&gt;
&lt;td&gt;원문 분할/번역 진행&lt;/td&gt;
&lt;/tr&gt;
&lt;tr&gt;
&lt;td&gt;권7&lt;/td&gt;
&lt;td&gt;기·발 등&lt;/td&gt;
&lt;td&gt;원문 분할/번역 진행&lt;/td&gt;
&lt;/tr&gt;
&lt;tr&gt;
&lt;td&gt;권8&lt;/td&gt;
&lt;td&gt;제문·상량문 등&lt;/td&gt;
&lt;td&gt;원문 분할/번역 진행&lt;/td&gt;
&lt;/tr&gt;
&lt;tr&gt;
&lt;td&gt;권9&lt;/td&gt;
&lt;td&gt;비·묘갈 등&lt;/td&gt;
&lt;td&gt;원문 분할/번역 진행&lt;/td&gt;
&lt;/tr&gt;
&lt;tr&gt;
&lt;td&gt;권10&lt;/td&gt;
&lt;td&gt;묘지·행장 등&lt;/td&gt;
&lt;td&gt;원문 분할/번역 진행&lt;/td&gt;
&lt;/tr&gt;
&lt;tr&gt;
&lt;td&gt;권11&lt;/td&gt;
&lt;td&gt;부록&lt;/td&gt;
&lt;td&gt;원문 분할/번역 진행&lt;/td&gt;
&lt;/tr&gt;
&lt;tr&gt;
&lt;td&gt;권12&lt;/td&gt;
&lt;td&gt;부록&lt;/td&gt;
&lt;td&gt;원문 분할/번역 진행&lt;/td&gt;
&lt;/tr&gt;
&lt;/tbody&gt;
&lt;/table&gt;
&lt;h2&gt;번역 원칙&lt;/h2&gt;
&lt;ol&gt;
&lt;li&gt;원문을 임의로 매끄럽게 고치지 않는다.&lt;/li&gt;
&lt;li&gt;시는 먼저 의미 전달 중심의 산문형 현대어로 옮긴다.&lt;/li&gt;
&lt;li&gt;인명·관직·지명·전고가 불확실한 곳은 단정하지 않고 검수 대상으로 남긴다.&lt;/li&gt;
&lt;li&gt;장문의 서간·잡저는 문단 단위로 나누어 원문과 현대어를 대조할 수 있게 한다.&lt;/li&gt;
&lt;li&gt;AI 번역은 학술적 확정 국역으로 표시하지 않는다.&lt;/li&gt;
&lt;/ol&gt;
</content:encoded></item><item><title>세자행적 (世子行蹟)</title><link>https://korclassic.pma.kr/posts/sejahangjeok/</link><guid isPermaLink="true">https://korclassic.pma.kr/posts/sejahangjeok/</guid><description>소현세자와 효장세자의 묘지를 원문과 함께 읽을 수 있도록 옮긴 현대 한국어 AI 초벌 번역입니다.</description><pubDate>Tue, 15 Sep 2026 00:00:00 GMT</pubDate><content:encoded>&lt;blockquote&gt;
&lt;p&gt;&lt;strong&gt;번역 상태: AI 초벌 번역 완료 · 인문학 검수 전&lt;/strong&gt;&lt;br /&gt;
이 번역은 원문 대조를 거친 초벌 번역이며, 학술적으로 확정된 국역이 아닙니다. 인명·관직·의례·고사와 판본 이문은 추가 검수가 필요합니다.&lt;/p&gt;
&lt;/blockquote&gt;
&lt;h2&gt;자료 정보&lt;/h2&gt;
&lt;ul&gt;
&lt;li&gt;&lt;strong&gt;서명:&lt;/strong&gt; 《세자행적(世子行蹟)》&lt;/li&gt;
&lt;li&gt;&lt;strong&gt;수록:&lt;/strong&gt; 소현세자 묘지(昭顯世子墓誌), 어제 효장세자 묘지(御製孝章世子墓誌)&lt;/li&gt;
&lt;li&gt;&lt;strong&gt;주요 원문 출처:&lt;/strong&gt; 한국고전번역원 / 공공데이터포털 「한국고전번역원_한국고전총간_전기류_2_세자행적」&lt;/li&gt;
&lt;li&gt;&lt;strong&gt;원문 데이터 이용조건:&lt;/strong&gt; 이용허락범위 제한 없음&lt;/li&gt;
&lt;li&gt;&lt;strong&gt;대조 원문:&lt;/strong&gt; 위키문헌 《世子行蹟》, 조선왕조실록의 효장세자 행록·지문 병행 기사&lt;/li&gt;
&lt;li&gt;&lt;strong&gt;번역 방식:&lt;/strong&gt; 원문 문단별 현대 한국어 초벌 번역 + 필요한 곳에 간단한 주석&lt;/li&gt;
&lt;/ul&gt;
&lt;hr /&gt;
&lt;h1&gt;1. 소현세자 묘지(昭顯世子墓誌)&lt;/h1&gt;
&lt;h2&gt;1-1. 귀국과 죽음&lt;/h2&gt;
&lt;h3&gt;원문&lt;/h3&gt;
&lt;blockquote&gt;
&lt;p&gt;上之十五年，有南漢之厄，王世子入質於清國。越九年乙酉二月，始獲返國。越四月戊寅，王世子有疾遽劇，卒於昌慶宮之歡慶殿。上在違豫中，親蒞喪制。嗚呼！天運之戾，一至於斯？上下之痛，寧有旣乎？擇卜，越六月十五日丙寅，梓室發引。十九日庚午，葬於孝陵右洞坐乙向辛之原，命臣植為之誌。&lt;/p&gt;
&lt;/blockquote&gt;
&lt;h3&gt;현대어 초벌 번역&lt;/h3&gt;
&lt;p&gt;인조 15년에 남한산성의 변란이 일어나 왕세자가 청나라에 볼모로 들어갔다. 그로부터 아홉 해가 지난 을유년 2월에야 비로소 귀국할 수 있었다. 그해 4월 무인일에 왕세자의 병이 갑자기 위중해져 창경궁 환경전에서 세상을 떠났다.&lt;/p&gt;
&lt;p&gt;임금도 병환 중이었으나 직접 상례를 살폈다. 아아, 하늘의 운수가 어그러진 것이 어찌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단 말인가. 임금에서 백성에 이르기까지 슬픔에 어찌 끝이 있겠는가.&lt;/p&gt;
&lt;p&gt;장지를 가려 6월 15일 병인일에 재궁을 발인하고, 19일 경오일에 효릉 오른쪽 골짜기의 을좌신향 언덕에 장사지냈다. 임금이 신 이식(李植)에게 명하여 이 묘지를 짓게 하였다.&lt;/p&gt;
&lt;blockquote&gt;
&lt;p&gt;&lt;strong&gt;주:&lt;/strong&gt; &lt;code&gt;南漢之厄&lt;/code&gt;은 병자호란 때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포위된 일을 가리킨다. &lt;code&gt;梓室&lt;/code&gt;은 왕실의 관을 높여 이르는 말이다.&lt;/p&gt;
&lt;/blockquote&gt;
&lt;h2&gt;1-2. 탄생과 세자 책봉, 정묘호란&lt;/h2&gt;
&lt;h3&gt;원문&lt;/h3&gt;
&lt;blockquote&gt;
&lt;p&gt;臣謹按世子諱𪶁，萬曆壬子正月四日己亥，誕生於會賢坊之潛宮。幼而岐嶷穎異，上之登寶位也，首選耆儒五臣敎訓備至。乙丑正月，禮加元服，策命為王世子。丁卯之變，車駕將幸江都，先命世子分朝鎭撫南服，大臣李元翼、申欽等輔之。行駐全州，開撫軍司，月餘兵罷，入覲江都，扈從還京。是年十月，行入學禮。十二月，聘參議姜碩期女，封嬪親迎如禮。甲戌六月，皇朝因奏請頒降策封誥命，幷賜冕服、彩段。太監盧維寧來宣，世子迎送享禮如儀。&lt;/p&gt;
&lt;/blockquote&gt;
&lt;h3&gt;현대어 초벌 번역&lt;/h3&gt;
&lt;p&gt;신이 삼가 살펴보건대, 세자의 휘는 왕(𪶁)이다. 만력 임자년 정월 4일 기해일에 회현방의 잠저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영특하고 남달랐다.&lt;/p&gt;
&lt;p&gt;임금께서 왕위에 오르자 가장 먼저 나이 많고 학식 있는 다섯 신하를 골라 세자를 가르치게 하여 교육을 빠짐없이 갖추었다. 을축년 정월에는 관례를 치르고 왕세자로 책봉하였다.&lt;/p&gt;
&lt;p&gt;정묘년의 변란이 일어나 임금의 행차가 강화도로 피난하려 하자, 먼저 세자에게 분조를 맡겨 남쪽 지방을 진무하게 하였다. 대신 이원익과 신흠 등이 세자를 보좌하였다. 세자는 전주에 머물러 무군사(撫軍司)를 설치하였다. 한 달 남짓 뒤 전쟁이 끝나자 강화도로 들어가 임금을 뵙고 호종하여 서울로 돌아왔다.&lt;/p&gt;
&lt;p&gt;그해 10월에는 입학례를 행하였다. 12월에는 참의 강석기의 딸을 맞아 세자빈으로 봉하고 예에 따라 친영하였다. 갑술년 6월에는 명나라 조정이 조선의 요청을 받아 책봉 고명을 내려 주고 면복과 채색 비단도 함께 내렸다. 태감 노유녕(盧維寧)이 와서 이를 선포하자 세자는 정해진 의례대로 맞이하고 전송하며 연향하였다.&lt;/p&gt;
&lt;blockquote&gt;
&lt;p&gt;&lt;strong&gt;주:&lt;/strong&gt; &lt;code&gt;分朝&lt;/code&gt;는 전란 때 임금의 조정과 별도로 세자 등이 이끈 임시 조정이다. &lt;code&gt;皇朝&lt;/code&gt;는 이 글에서 명나라를 높여 이르는 표현이다.&lt;/p&gt;
&lt;/blockquote&gt;
&lt;h2&gt;1-3. 볼모 생활과 귀국&lt;/h2&gt;
&lt;h3&gt;원문&lt;/h3&gt;
&lt;blockquote&gt;
&lt;p&gt;乙亥冬，仁烈王后升遐，秉禮宅憂，猝値丙子之變，從幸山城。丁丑，西行入瀋，明年，請歸國行大祥祭，而不得。庚辰春，始得請歸覲，甲申春，復歸覲，皆不得久留。是秋，轉入燕京，清國已定河北，卽促世子輟還，嬪御及諸公卿、質子大歸。上告廟頒赦，國人相慶。世子久留異域，數從軍旅，東獵朔荒，西穿燕塞，跋履山川，備經危險，雖神氣自若，而內受勞傷。還宮以後，連有寒熱之感，醫方錯誤，竟至不祿，嗚呼痛哉！世子壽三十四。嬪宮擧三男四女：元孫某方就傅受學，餘竝幼。&lt;/p&gt;
&lt;/blockquote&gt;
&lt;h3&gt;현대어 초벌 번역&lt;/h3&gt;
&lt;p&gt;을해년 겨울 인열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세자는 예에 따라 상을 치렀다. 그러던 중 갑자기 병자호란을 만나 임금을 따라 남한산성으로 들어갔다.&lt;/p&gt;
&lt;p&gt;정축년에는 서쪽으로 떠나 심양에 들어갔다. 이듬해 대상을 지내기 위해 귀국하게 해 달라고 청했으나 허락받지 못했다. 경진년 봄에야 처음으로 귀국하여 임금을 뵐 수 있었고, 갑신년 봄에도 다시 귀국하여 문안했으나 모두 오래 머무르지는 못했다.&lt;/p&gt;
&lt;p&gt;그해 가을에는 연경으로 옮겨 갔다. 청나라가 이미 중국 북부를 평정한 뒤 세자에게 돌아가도록 재촉하여, 세자빈과 여러 신하 및 볼모로 잡혀 있던 사람들이 크게 귀환하였다. 임금은 종묘에 이를 고하고 사면령을 내렸으며, 나라 사람들은 서로 경하하였다.&lt;/p&gt;
&lt;p&gt;세자는 오랫동안 이역에 머물면서 여러 차례 군대를 따라다녔다. 동쪽으로는 북방의 황야에서 사냥에 따라나섰고 서쪽으로는 연산의 요새를 지나며 산천을 넘나들어 온갖 위험을 겪었다. 겉으로는 태연한 모습을 잃지 않았지만 몸속으로는 피로와 손상을 입었다.&lt;/p&gt;
&lt;p&gt;궁궐로 돌아온 뒤 계속 오한과 발열 증세가 있었고, 치료법까지 잘못되어 끝내 세상을 떠났다. 아아, 슬프도다. 세자의 나이는 서른넷이었다. 세자빈은 아들 셋과 딸 넷을 낳았다. 원손은 막 스승에게 나아가 공부를 배우고 있었고, 나머지는 모두 어렸다.&lt;/p&gt;
&lt;h2&gt;1-4. 백성을 생각한 태도&lt;/h2&gt;
&lt;h3&gt;원문&lt;/h3&gt;
&lt;blockquote&gt;
&lt;p&gt;世子資性孝友，識度英毅。沖年撫軍，已自令旨指揮，一從大朝命戒。節損供御，嚴飭陪從，專務省弊裕民，申令州縣，毋失東作。路見藁草、覆濘，令曰：「此以飼馬，軍興之時，切勿屑用。」又廚禁牛肉，酥酪亦不許供，戒以勿殺耕牛。從臣請乘駕轎，不許，中途復請，則曰：「今明日乃大駕去邠日也，安敢坐乘？」終不許。兩道帥臣，分三邑兵數千，以備護衛，世子曰：「吾避敵南下，安用軍衆？可速入援京師。」及次全州，西報又急，大臣議轉向嶺海，世子又不肯，湖南幾撓而復定。旋駕之日，南民父老男女，沿途頌祝，至今稱之。&lt;/p&gt;
&lt;/blockquote&gt;
&lt;h3&gt;현대어 초벌 번역&lt;/h3&gt;
&lt;p&gt;세자는 타고난 성품이 효성스럽고 우애가 깊었으며, 식견이 넓고 뜻이 굳세고 과단성이 있었다. 어린 나이에 군무를 맡았지만 자신의 명령을 내릴 때에도 모두 임금의 명과 훈계를 따랐다.&lt;/p&gt;
&lt;p&gt;자신에게 올리는 물품을 줄이고 수행원들을 엄하게 단속하며, 폐단을 줄이고 백성의 삶을 넉넉하게 하는 데 힘썼다. 고을에는 농사철을 놓치지 말라고 거듭 명하였다.&lt;/p&gt;
&lt;p&gt;길에서 짚과 마른 풀을 진흙길 위에 깔아 둔 것을 보고는 이렇게 명하였다.&lt;/p&gt;
&lt;blockquote&gt;
&lt;p&gt;“이것은 말을 먹이는 데 써야 할 것이다. 군사가 일어난 때이니 하찮은 데 함부로 쓰지 말라.”&lt;/p&gt;
&lt;/blockquote&gt;
&lt;p&gt;또 주방에서 쇠고기를 쓰지 못하게 하였고 유제품도 올리지 못하게 하면서 밭 가는 소를 죽이지 말라고 경계하였다.&lt;/p&gt;
&lt;p&gt;수행 신하들이 가마를 타라고 청했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길 가운데서 다시 청하자 세자는 임금께서 난리를 피해 떠나신 위급한 때를 들어 “내가 어찌 앉아서 탈 수 있겠는가?”라고 하며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lt;/p&gt;
&lt;p&gt;두 도의 지휘관이 세 고을에서 병사 수천 명을 나누어 보내 호위를 준비하자 세자가 말했다.&lt;/p&gt;
&lt;blockquote&gt;
&lt;p&gt;“내가 적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왔는데 많은 군사를 어디에 쓰겠는가. 속히 서울로 들어가 구원하게 하라.”&lt;/p&gt;
&lt;/blockquote&gt;
&lt;p&gt;전주에 이르렀을 때 서쪽의 전황이 다시 급해졌다. 대신들이 영남과 바닷가 쪽으로 방향을 돌리자고 의논했지만 세자는 또 따르지 않았다. 흔들리던 호남의 민심은 다시 안정되었다. 세자가 돌아가는 날 남쪽 지방의 노인과 남녀 백성들이 길가에서 칭송하고 축원했으며, 그 일은 당시까지도 사람들에게 전해졌다.&lt;/p&gt;
&lt;blockquote&gt;
&lt;p&gt;&lt;strong&gt;주:&lt;/strong&gt; 원문의 &lt;code&gt;大駕去邠&lt;/code&gt;은 임금이 난리를 피해 떠나는 상황을 고사에 빗대어 표현한 대목으로 보인다. 정확한 고사 해석은 추가 검수가 필요하다.&lt;/p&gt;
&lt;/blockquote&gt;
&lt;h2&gt;1-5. 스스로 볼모가 되기를 청하다&lt;/h2&gt;
&lt;h3&gt;원문&lt;/h3&gt;
&lt;blockquote&gt;
&lt;p&gt;上之初駐山城，群臣請亟出如丁卯故事，世子哭泣，不欲違難遠離。旣而清將脅我以世子為質，城中盡駭，三司力爭以為決不可從，上亦不忍也。世子卽自請曰：「苟安社稷而保君父，則臣何憚行？」及被拘而西也，大君偕行，同館以處，怡愉日篤，諸從者一無間言。寧、錦之役，見迫從軍，而世子會有微疾，從臣圖代以大君。及當再行，世子憫大君獨勞，諉以他故，而堅請自行，適以軍門之令止之，而止。&lt;/p&gt;
&lt;/blockquote&gt;
&lt;h3&gt;현대어 초벌 번역&lt;/h3&gt;
&lt;p&gt;임금이 처음 남한산성에 머물렀을 때 신하들은 정묘호란 때의 전례처럼 세자가 서둘러 성을 나가야 한다고 청했다. 그러나 세자는 울면서, 어려움에 처한 임금을 두고 멀리 떠나고 싶어 하지 않았다.&lt;/p&gt;
&lt;p&gt;얼마 뒤 청나라 장수가 세자를 볼모로 내놓으라고 조선을 위협했다. 성 안의 사람들은 모두 놀랐고 삼사는 결코 따를 수 없는 일이라고 강하게 다투어 간했다. 임금도 차마 그렇게 하지 못했다.&lt;/p&gt;
&lt;p&gt;그러자 세자가 스스로 청하였다.&lt;/p&gt;
&lt;blockquote&gt;
&lt;p&gt;“종묘사직을 편안하게 하고 임금이신 아버지를 보전할 수만 있다면, 신이 어찌 떠나는 것을 두려워하겠습니까?”&lt;/p&gt;
&lt;/blockquote&gt;
&lt;p&gt;세자가 붙잡혀 서쪽으로 갈 때 대군도 함께 갔다. 두 사람은 같은 관소에서 지내며 서로 화목했고 날이 갈수록 우애가 두터워져, 수행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두 사람을 두고 이간하는 말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lt;/p&gt;
&lt;p&gt;영원·금주 전투 때 청의 압박으로 종군하게 되었는데, 마침 세자에게 가벼운 병이 있어 수행 신하들이 대군이 대신 가도록 하려 했다. 다시 종군해야 할 때가 되자 세자는 대군만 홀로 수고하는 것을 딱하게 여겨 자신이 직접 가기를 굳게 청했다. 마침 군영의 명령으로 그 일이 중지되어 가지 않게 되었다.&lt;/p&gt;
&lt;blockquote&gt;
&lt;p&gt;&lt;strong&gt;주:&lt;/strong&gt; &lt;code&gt;寧、錦之役&lt;/code&gt;은 명·청 전쟁기의 영원(寧遠)·금주(錦州) 방면 전투를 가리킨다.&lt;/p&gt;
&lt;/blockquote&gt;
&lt;h2&gt;1-6. 청에서의 처신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lt;/h2&gt;
&lt;h3&gt;원문&lt;/h3&gt;
&lt;blockquote&gt;
&lt;p&gt;時和好初定，事釁多端，殊方重譯，讒巧百端。世子處於兩間，不懾不忤，蹈難如夷，接應彌縫，擧無失辭。諸王群帥，久益歡洽，終不敢加以無禮。世子坦懷待物，絶去邊幅，待遇宮臣，一以和厚。諸有疾病困厄者，必周恤拯濟，盡力乃已。文學鄭雷卿在館，挑禍不測，世子冒危伸救，卒不得，則握手泣訣，哀動左右。襲斂諸具，皆自內備，聞者莫不感聳。常時尊敬師傅，聞其逝歿，必擧哀臨弔。雖已去職，特念舊恩，斷以己意而行之，此前所未有之擧也。&lt;/p&gt;
&lt;/blockquote&gt;
&lt;h3&gt;현대어 초벌 번역&lt;/h3&gt;
&lt;p&gt;당시는 화친이 막 정해진 때라 사건과 갈등이 끊이지 않았고, 먼 타국에서 여러 단계의 통역을 거치는 사이 모함과 교묘한 술수도 갖가지로 일어났다.&lt;/p&gt;
&lt;p&gt;세자는 조선과 청 사이에서 처신하면서 겁먹어 굽히지도 않고 그렇다고 상대를 거슬러 화를 부르지도 않았다. 어려움 속에서도 평탄한 길을 걷듯 침착하게 대응하며 양쪽 사이를 메웠고, 말을 잘못하여 문제가 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청의 여러 왕과 장수들도 시간이 갈수록 세자와 사이가 좋아져 끝내 무례하게 대하지 못했다.&lt;/p&gt;
&lt;p&gt;세자는 마음을 터놓고 사람을 대했으며 겉치레와 거만한 태도를 버렸다. 궁료들을 언제나 온화하고 후하게 대했다. 병들거나 곤궁에 빠진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두루 돌보고 구제하여 할 수 있는 데까지 힘을 다했다.&lt;/p&gt;
&lt;p&gt;문학 정뇌경(鄭雷卿)이 심양의 관소에서 큰 화를 당하게 되자 세자는 위험을 무릅쓰고 그를 구하려 했다.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자 손을 잡고 울며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고, 주변 사람들까지 슬퍼할 정도였다. 염습에 필요한 여러 물품도 모두 세자 측에서 마련하였다. 이 일을 들은 사람들은 감동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lt;/p&gt;
&lt;p&gt;평소에도 스승과 사부를 공경하여 그들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으면 반드시 곡하고 직접 조문하였다. 이미 직책에서 물러난 사람이라 해도 옛 은의를 특별히 생각하여 자신의 판단으로 예를 행했는데, 이는 이전에는 없던 일이었다.&lt;/p&gt;
&lt;h2&gt;1-7. 시호와 이식의 맺음말&lt;/h2&gt;
&lt;h3&gt;원문&lt;/h3&gt;
&lt;blockquote&gt;
&lt;p&gt;上用廷臣議，取明德有勞行見中外之義，贈諡曰昭顯，吁！其至矣。臣謹耳目所聆睹，而志其大者如右。其他如春防所記禮儀之節、辭令之文、書筵講問、行館擧措，非係德行之本者，不能盡著。謹誌。&lt;/p&gt;
&lt;/blockquote&gt;
&lt;h3&gt;현대어 초벌 번역&lt;/h3&gt;
&lt;p&gt;임금은 조정 신하들의 의논에 따라 ‘밝은 덕이 있고 공로가 있다’는 뜻과 ‘행실이 안팎에 드러났다’는 뜻을 취하여 시호를 **소현(昭顯)**이라 내렸다. 아아, 참으로 지극한 이름이다.&lt;/p&gt;
&lt;p&gt;신은 삼가 귀로 듣고 눈으로 본 것 가운데 큰일만을 위와 같이 기록하였다. 그 밖에 춘방에서 기록한 여러 의례의 절차와 외교적 언사, 서연에서 강론하고 문답한 내용, 행관에서의 행동과 조처 등은 덕행의 근본과 직접 관계된 것이 아니므로 모두 적을 수 없었다. 삼가 기록한다.&lt;/p&gt;
&lt;hr /&gt;
&lt;h1&gt;2. 어제 효장세자 묘지(御製孝章世子墓誌)&lt;/h1&gt;
&lt;blockquote&gt;
&lt;p&gt;이 글은 영조가 직접 지은 효장세자의 묘지이다. 일부 전승 원문에는 글자가 달리 적힌 곳이 있어 조선왕조실록의 병행 원문을 함께 대조하였다.&lt;/p&gt;
&lt;/blockquote&gt;
&lt;h2&gt;2-1. 세자빈 조씨&lt;/h2&gt;
&lt;h3&gt;원문&lt;/h3&gt;
&lt;blockquote&gt;
&lt;p&gt;嬪趙氏，豐陵君文命女。乙未十二月十四日，生於崇敎坊私第。&lt;/p&gt;
&lt;/blockquote&gt;
&lt;h3&gt;현대어 초벌 번역&lt;/h3&gt;
&lt;p&gt;세자빈 조씨는 풍릉군 조문명의 딸이다. 을미년 12월 14일 숭교방의 사저에서 태어났다.&lt;/p&gt;
&lt;h2&gt;2-2. 탄생과 어린 시절&lt;/h2&gt;
&lt;h3&gt;원문&lt;/h3&gt;
&lt;blockquote&gt;
&lt;p&gt;世子諱緈，字聖敬。己亥肅廟四十五年二月十五日申時，生於順化坊彰義宮私第。及其妊娠，夢見瑞鳥集於室，復見金龜焉，卽靖嬪李氏所誕也。甫數歲，有若成人，行動擧止超於凡兒。辛丑秋，承儲入闕也，世子年纔三歲，故幼沖之年，趁不能同詣闕中，姑留私第矣。遊戲之中，夢醞之間，頻呼也，或因呼嗚咽者，孝親之心，根於天性故也。其冬入闕之後，侍於東朝兩殿也，跪膝正坐，應對如響，三殿奇愛之。甲辰冬，始封敬義君，乙巳春，進冊儲副，卽予元年，年甫七歲。而及夫大庭行禮、正堂受賀，動容周旋，無不中禮，是本性之然也。豈常敎所及哉？&lt;/p&gt;
&lt;/blockquote&gt;
&lt;h3&gt;현대어 초벌 번역&lt;/h3&gt;
&lt;p&gt;세자의 휘는 행(緈)이고 자는 성경(聖敬)이다. 기해년, 숙종 45년 2월 15일 신시에 순화방 창의궁의 사저에서 태어났다. 어머니 정빈 이씨가 임신해 있을 때 방 안에 상서로운 새가 모여드는 꿈을 꾸고 다시 금빛 거북을 보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lt;/p&gt;
&lt;p&gt;세자는 겨우 몇 살이 되었을 때부터 마치 어른 같았고, 행동과 몸가짐이 보통 아이들과 달랐다.&lt;/p&gt;
&lt;p&gt;신축년 가을, 내가 왕위 계승자의 지위로 궁궐에 들어갈 때 세자는 겨우 세 살이었다. 너무 어렸기 때문에 곧바로 함께 궁에 들어오지 못하고 잠시 사저에 머물렀다. 놀 때나 꿈에서 깨어날 때에도 자주 아버지를 불렀으며, 때로는 부르다가 목이 메어 울기도 하였다.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이 천성에서 나온 까닭이었다.&lt;/p&gt;
&lt;p&gt;그해 겨울 궁궐에 들어온 뒤 동조의 두 전각에 모실 때에는 무릎을 꿇고 반듯하게 앉아 물음에 곧바로 대답하였다. 세 전(三殿)에서 모두 남다르게 사랑하였다.&lt;/p&gt;
&lt;p&gt;갑진년 겨울 처음 경의군에 봉해졌고, 을사년 봄에는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바로 내가 즉위한 첫해였으며 세자의 나이는 겨우 일곱 살이었다. 큰 뜰에서 의식을 행하고 정전에서 하례를 받을 때 몸가짐과 움직임이 모두 예법에 맞았다. 이는 본성이 그러했던 것이니, 어찌 평범한 교육만으로 이를 수 있는 일이겠는가.&lt;/p&gt;
&lt;blockquote&gt;
&lt;p&gt;&lt;strong&gt;이문 주:&lt;/strong&gt; 《세자행적》 전사본의 &lt;code&gt;夢醞之間，頻呼也&lt;/code&gt;는 병행되는 실록 원문에서 &lt;code&gt;夢醒之間，頻呼爺&lt;/code&gt;로 확인된다. 여기서는 “꿈에서 깨어날 때에도 자주 아버지를 불렀다”로 옮겼다.&lt;/p&gt;
&lt;/blockquote&gt;
&lt;h2&gt;2-3. 엄숙한 성품과 문신종 이야기&lt;/h2&gt;
&lt;h3&gt;원문&lt;/h3&gt;
&lt;blockquote&gt;
&lt;p&gt;方在沖年，承此貳極，而非特接待宮僚，燕居與中官處，儼若大人，未嘗遊戲焉。一日，小內官兩人相與言詰，擧措不謹，故世子默視良久，招他中官而言曰：「此內官須臾勿侍。」中官莫知其故，請問其故，乃曰：「俄於予前，相詰不恭故也。」中官請以此稟於大朝警飭焉，則始許，其造次之間，從容嚴肅若此也。且於平時，與中官講學書字也，不與年少內官遊，而每與老成中官處焉，其超乎常情，一如也。凡諸翫好，其無潛心，而常曰：「雖可觀者，一見足也，何必心着？」自雲觀進問辰鍾，此亦一攬而已，置諸書堂矣。年少一內官見而偶傷，以此告於予，以事出無情，勿問矣。世子從傍而笑焉，予顧問其由，對曰「此微物也。而因微物請罰人，是以笑」雲，故予不覺心歎而自喜曰：「世子器度寬容若此，此吾東方之福矣。」&lt;/p&gt;
&lt;/blockquote&gt;
&lt;h3&gt;현대어 초벌 번역&lt;/h3&gt;
&lt;p&gt;어린 나이에 왕세자의 자리에 올랐지만 궁료들을 접할 때뿐 아니라 평소 거처에서 내관들과 함께 있을 때에도 마치 어른처럼 의젓하여 좀처럼 장난을 하지 않았다.&lt;/p&gt;
&lt;p&gt;어느 날 어린 내관 둘이 서로 말다툼하며 행동을 삼가지 않았다. 세자는 한참 말없이 바라보다가 다른 내관을 불러 말했다.&lt;/p&gt;
&lt;blockquote&gt;
&lt;p&gt;“이 내관들은 당분간 내 곁에서 시종하지 못하게 하라.”&lt;/p&gt;
&lt;/blockquote&gt;
&lt;p&gt;내관들이 까닭을 알지 못해 묻자 세자가 말했다.&lt;/p&gt;
&lt;blockquote&gt;
&lt;p&gt;“조금 전에 내 앞에서 서로 다투어 공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lt;/p&gt;
&lt;/blockquote&gt;
&lt;p&gt;내관이 이 일을 임금에게 아뢰어 경계하고 벌주게 하겠다고 청하자 그제야 허락하였다. 갑작스러운 상황에서도 침착하고 엄숙한 태도가 이와 같았다.&lt;/p&gt;
&lt;p&gt;평소 내관들과 글을 배우고 글씨를 쓸 때에도 젊은 내관들과 어울려 놀지 않고 늘 나이 들고 점잖은 내관들과 함께 지냈다. 보통 아이의 정서에서 벗어난 모습이 한결같았다.&lt;/p&gt;
&lt;p&gt;여러 장난감이나 구경거리에도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다. 늘 이렇게 말했다.&lt;/p&gt;
&lt;blockquote&gt;
&lt;p&gt;“볼 만한 물건이라 해도 한 번 보면 충분하다. 어찌 반드시 마음을 붙들어 둘 필요가 있겠는가?”&lt;/p&gt;
&lt;/blockquote&gt;
&lt;p&gt;관상감에서 문신종(問辰鍾)을 올렸을 때에도 한 번 구경한 뒤 서당에 두게 하였다. 한 젊은 내관이 그것을 보다가 우연히 손상시켰다. 이 일이 나에게 보고되었으나 고의가 아닌 일이라 조사하지 말라고 하였다.&lt;/p&gt;
&lt;p&gt;그때 세자가 옆에서 웃었다. 내가 이유를 묻자 세자가 대답했다.&lt;/p&gt;
&lt;blockquote&gt;
&lt;p&gt;“이것은 작은 물건일 뿐인데, 작은 물건 때문에 사람을 벌해 달라고 청하는 것이 우스워서 웃었습니다.”&lt;/p&gt;
&lt;/blockquote&gt;
&lt;p&gt;나는 자신도 모르게 속으로 감탄하고 기뻐하며 생각하였다.&lt;/p&gt;
&lt;blockquote&gt;
&lt;p&gt;“세자의 기량과 도량이 이처럼 너그럽구나. 이는 우리 동방의 복이다.”&lt;/p&gt;
&lt;/blockquote&gt;
&lt;blockquote&gt;
&lt;p&gt;&lt;strong&gt;주:&lt;/strong&gt; &lt;code&gt;問辰鍾(문신종)&lt;/code&gt;은 시간을 알기 위한 좌식 시계의 일종으로, 청을 통해 들어온 서양식 시계를 관상감에서 본떠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lt;/p&gt;
&lt;/blockquote&gt;
&lt;h2&gt;2-4. 《효경》과 학문&lt;/h2&gt;
&lt;h3&gt;원문&lt;/h3&gt;
&lt;blockquote&gt;
&lt;p&gt;畢講《孝經》，殿講於予，予問：「孝者何事？」對曰：「事親盡道者孝矣。」其得要旨，若此也。於胄筵召對，宮官所達者，其或差焉，或所陳者，前所講者，則及夫講畢，問於左右曰：「前後宮官之言，其何相違？且所陳者，非《孝經》某章，《小學》某篇所在者耶！」其潛心聽焉，常時留意，可知也。&lt;/p&gt;
&lt;/blockquote&gt;
&lt;h3&gt;현대어 초벌 번역&lt;/h3&gt;
&lt;p&gt;《효경》 강독을 마친 뒤 나에게 전강을 하였다. 내가 물었다.&lt;/p&gt;
&lt;blockquote&gt;
&lt;p&gt;“효란 무엇을 하는 것이냐?”&lt;/p&gt;
&lt;/blockquote&gt;
&lt;p&gt;세자가 대답하였다.&lt;/p&gt;
&lt;blockquote&gt;
&lt;p&gt;“부모를 섬기면서 도리를 다하는 것이 효입니다.”&lt;/p&gt;
&lt;/blockquote&gt;
&lt;p&gt;요점을 파악한 것이 이와 같았다.&lt;/p&gt;
&lt;p&gt;세자 교육을 위한 경연에서 궁관의 설명이 서로 다르거나 예전에 배운 내용과 관계되는 말이 나오면, 강론이 끝난 뒤 좌우 사람들에게 물었다.&lt;/p&gt;
&lt;blockquote&gt;
&lt;p&gt;“앞뒤 궁관의 말이 어찌하여 서로 다른가? 또 방금 말한 것은 《효경》의 어느 장이나 《소학》의 어느 편에 나오는 내용이 아니던가?”&lt;/p&gt;
&lt;/blockquote&gt;
&lt;p&gt;이것만 보아도 세자가 평소 얼마나 마음을 기울여 듣고 배운 내용을 기억했는지 알 수 있다.&lt;/p&gt;
&lt;h2&gt;2-5. 입학·관례·가례&lt;/h2&gt;
&lt;h3&gt;원문&lt;/h3&gt;
&lt;blockquote&gt;
&lt;p&gt;丁未春，謁先聖，齒於學。同年秋九月，行冠禮，又同月行醮禮。時九歲而講聲清朗，動容禮節，儼若成人。六禮之日，日氣俱清明，心自喜曰：「不見其形，願察其影。凡事難乎一日之暇，而自冊封與夫入學、冠、嘉之日，日皆清朗。而夜朝雖陰，及夫行禮，每也如此，天祐宗祊，可以仰料。予雖涼德，東國其庶幾。」豈意今日遽以逝焉？興言及此，不覺長吁。&lt;/p&gt;
&lt;/blockquote&gt;
&lt;h3&gt;현대어 초벌 번역&lt;/h3&gt;
&lt;p&gt;정미년 봄에는 선성 공자에게 알현하는 예를 행하고 학교에 입학하였다. 같은 해 가을 9월에는 관례를 치렀고 같은 달에 혼례와 관련된 예도 행하였다.&lt;/p&gt;
&lt;p&gt;당시 나이는 아홉 살이었으나 글을 강하는 목소리는 맑고 또렷했고, 몸을 움직이고 예를 행하는 모습은 마치 어른 같았다.&lt;/p&gt;
&lt;p&gt;여섯 가지 혼례 절차를 행하던 날마다 날씨가 맑았다. 나는 마음속으로 기뻐하며 이렇게 생각했다.&lt;/p&gt;
&lt;blockquote&gt;
&lt;p&gt;“그 형체를 직접 볼 수 없다면 그 그림자라도 살펴보고 싶다. 무슨 일이든 단 하루의 좋은 때를 얻기도 어려운데, 책봉과 입학, 관례와 가례를 행한 날마다 날씨가 맑았다. 밤이나 아침에 흐리더라도 막상 예를 행할 때가 되면 늘 이와 같았다. 하늘이 종묘사직을 돕는다는 것을 우러러 짐작할 수 있겠다. 내가 비록 덕이 부족하더라도 우리 동방에 희망이 있겠구나.”&lt;/p&gt;
&lt;/blockquote&gt;
&lt;p&gt;오늘 이렇게 갑자기 세상을 떠날 줄 어찌 알았겠는가. 이 말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긴 탄식이 나온다.&lt;/p&gt;
&lt;h2&gt;2-6. 효성과 형제애&lt;/h2&gt;
&lt;h3&gt;원문&lt;/h3&gt;
&lt;blockquote&gt;
&lt;p&gt;每當新物，不忍先嘗，必皆獻之，雖有疾恙，不至重焉，則必盥洗衣冠而見予焉。每當國忌，以其沖年，若不備素饌，則以中官召掌膳宮人，嚴辭諭焉，內外之人，莫不動色矣。友愛同氣，亦由本然。闕中事例，所處異焉，頻頻往視。而左右宮人，若有不協之言，世子痛其或流間焉，飮泣告予，其孝友之性，一若此也。且凡事有未安之事，則不以遽色，以中官嚴正曉喩，宮人莫不畏以歎服焉。&lt;/p&gt;
&lt;/blockquote&gt;
&lt;h3&gt;현대어 초벌 번역&lt;/h3&gt;
&lt;p&gt;새로운 음식이 들어올 때마다 차마 자신이 먼저 맛보지 못하고 반드시 먼저 웃어른께 올렸다. 몸이 아프더라도 병이 심하지 않으면 반드시 세수하고 의관을 갖춘 뒤 나를 만나러 왔다.&lt;/p&gt;
&lt;p&gt;나라의 기일을 맞았을 때에는 세자가 어리다는 이유로 소찬을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내관을 시켜 음식을 맡은 궁인을 불러 엄하게 타일렀다. 궁 안팎의 사람들이 이 모습을 보고 모두 태도를 달리할 만큼 감복하였다.&lt;/p&gt;
&lt;p&gt;형제자매를 사랑하는 마음도 본성에서 나왔다. 궁중의 관례 때문에 서로 다른 곳에서 지냈지만 자주 찾아가 보았다. 곁의 궁인들이 형제 사이를 어그러뜨릴 만한 말을 하면 그런 말이 서로에게 전해질까 안타까워하며 울음을 삼키고 나에게 알렸다. 효도와 우애의 성품이 한결같이 이와 같았다.&lt;/p&gt;
&lt;p&gt;또 어떤 일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해도 갑자기 얼굴빛을 바꾸어 화를 내지 않았다. 내관을 통해 엄정하게 까닭을 설명하고 타일렀으므로, 궁인들이 모두 두려워하면서도 감탄하고 복종하였다.&lt;/p&gt;
&lt;h2&gt;2-7. 병환과 임종&lt;/h2&gt;
&lt;h3&gt;원문&lt;/h3&gt;
&lt;blockquote&gt;
&lt;p&gt;嗚呼！疾篤也，聞其師之入來，幡然起坐，更以斂容，又聞賓客之入，欲起而力不能焉，此亦可見平日性品也。一疾沈綿之後，補瀉相眩，醫藥罔效，歎聲告予曰：「世無名醫，雜試諸藥，徒致煩告。願勿更藥，從容自靜焉。」其卻乎陳根，付之天命，若非老師、熟儒達理者，所可及也？及夫臨革，予以顔接顔，呼而「知予夫？」雲，則微微應聲，眼淚沾顋，洞洞孝心，不泯於耿耿中故也。&lt;/p&gt;
&lt;/blockquote&gt;
&lt;h3&gt;현대어 초벌 번역&lt;/h3&gt;
&lt;p&gt;아아. 병이 위독해졌을 때 스승이 들어왔다는 말을 듣자 세자는 갑자기 몸을 일으켜 앉고 다시 표정을 가다듬었다. 또 빈객이 들어왔다는 말을 듣고는 일어나려 했지만 힘이 없어 그러지 못했다. 이 모습에서도 평소의 성품을 알 수 있다.&lt;/p&gt;
&lt;p&gt;병이 오래 이어지면서 보하는 약과 사하는 약을 뒤섞어 쓰는 사이 치료는 효과가 없었다. 세자는 탄식하며 나에게 말했다.&lt;/p&gt;
&lt;blockquote&gt;
&lt;p&gt;“세상에 명의가 없으니 여러 약을 이것저것 시험해 보아도 괴로움만 더할 뿐입니다. 바라건대 더는 약을 쓰지 말고 조용히 제 몸을 편안히 두게 해 주십시오.”&lt;/p&gt;
&lt;/blockquote&gt;
&lt;p&gt;묵은 뿌리 같은 약재에 더 기대지 않고 목숨을 천명에 맡기려는 태도는 노련한 스승이나 도리에 통달한 숙유가 아니라면 어찌 이르기 쉬운 경지이겠는가.&lt;/p&gt;
&lt;p&gt;임종이 가까워졌을 때 나는 얼굴을 세자의 얼굴 가까이에 대고 “나를 알아보겠느냐?”라고 불렀다. 세자는 아주 희미하게 대답했고 눈물이 뺨을 적셨다. 의식이 희미해지는 가운데에서도 깊은 효심은 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lt;/p&gt;
&lt;blockquote&gt;
&lt;p&gt;&lt;strong&gt;검수 주:&lt;/strong&gt; &lt;code&gt;其卻乎陳根&lt;/code&gt;은 문맥상 더 이상의 약물 치료를 물리고 천명에 맡겼다는 뜻으로 읽었다. &lt;code&gt;陳根&lt;/code&gt;의 정확한 수사적 의미는 추가 고증이 필요하다.&lt;/p&gt;
&lt;/blockquote&gt;
&lt;h2&gt;2-8. 훙서와 장례&lt;/h2&gt;
&lt;h3&gt;원문&lt;/h3&gt;
&lt;blockquote&gt;
&lt;p&gt;嗚呼痛哉！戊申十一月十六日亥時，薨逝於昌慶宮之進修堂，卽忌日也，壽甫十歲，居貳極者纔四年矣。同年十二月初二日，議諡曰孝章。己酉正月二十六日，以禮葬於坡州條里洞乙坐辛向原，順陵左岡也。&lt;/p&gt;
&lt;/blockquote&gt;
&lt;h3&gt;현대어 초벌 번역&lt;/h3&gt;
&lt;p&gt;아아, 슬프도다. 무신년 11월 16일 해시에 창경궁 진수당에서 훙서하였다. 나이는 겨우 열 살이었고 왕세자의 자리에 있은 지 겨우 네 해였다.&lt;/p&gt;
&lt;p&gt;같은 해 12월 2일 의논하여 시호를 **효장(孝章)**이라 정하였다. 기유년 정월 26일 예에 따라 파주 조리동의 을좌신향 언덕, 순릉의 왼쪽 산등성이에 장사지냈다.&lt;/p&gt;
&lt;h2&gt;2-9. 영조의 맺음말&lt;/h2&gt;
&lt;h3&gt;원문&lt;/h3&gt;
&lt;blockquote&gt;
&lt;p&gt;嗚呼！予以匪德，所恃者惟元良，而性又若此，冀東方萬年之福矣，何意年纔一旬，至乎此境？言念宗社，痛尤難抑。今玆行錄，只述平日表表者，豈一句，誇於本事？予雖不學，不為此也。皆中官之所共聞，朝臣之所共睹者也。至於夢瑞，雖近傅會，前後諡狀，已有此等語，而俱予所夢也，略記於此焉。嗚呼！哀痛之中，思焉若割，略略撰焉。而因大臣陳達，不以詞臣更撰誌文，而只以行錄，添補如干文字，親寫入石，藏於幽室。嗚呼！此懷庶可伸也夫？嗚呼痛哉！&lt;/p&gt;
&lt;/blockquote&gt;
&lt;h3&gt;현대어 초벌 번역&lt;/h3&gt;
&lt;p&gt;아아. 덕이 부족한 내가 의지한 것은 오직 훌륭한 세자뿐이었고, 그 성품마저 이와 같았기에 우리 동방에 만년의 복이 이어지기를 기대하였다. 어찌 나이가 겨우 열 살인데 이런 지경에 이를 줄 알았겠는가. 종묘사직을 생각하면 슬픔을 더욱 억누르기 어렵다.&lt;/p&gt;
&lt;p&gt;이번 행록에는 평소 뚜렷하게 드러난 일만을 적었다. 어찌 한 글자 한 문장이라도 실제보다 과장하겠는가. 내가 비록 학문이 부족하지만 그런 일을 하지는 않는다. 여기에 적은 것은 모두 내관들이 함께 들은 것이고 조정 신하들이 함께 본 일이다.&lt;/p&gt;
&lt;p&gt;태몽의 상서로운 징조 같은 이야기는 억지로 끌어다 붙인 말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앞뒤의 시호 관련 기록에도 이미 이런 말이 있고, 이 꿈들은 내가 직접 겪은 일이므로 여기에 간략히 적는다.&lt;/p&gt;
&lt;p&gt;아아. 슬픔 속에서 생각할 때마다 살을 베어 내는 듯하다. 그래서 대략이나마 이 글을 지었다. 대신들이 아뢴 의견에 따라 문신에게 다시 지문을 짓게 하지 않고, 이 행록에 몇 글자를 보태어 내가 직접 써서 돌에 새기고 무덤 속에 간직하게 하였다.&lt;/p&gt;
&lt;p&gt;아아, 이렇게라도 이 마음을 조금은 펼칠 수 있겠는가. 아아, 슬프도다.&lt;/p&gt;
&lt;hr /&gt;
&lt;h1&gt;번역 메모&lt;/h1&gt;
&lt;p&gt;이번 공개본은 &lt;strong&gt;전체 본문의 1차 현대어 번역&lt;/strong&gt;이다. 번역 범위 자체는 완료했지만 다음 항목은 아직 검수가 남아 있다.&lt;/p&gt;
&lt;ul&gt;
&lt;li&gt;소현세자 묘지의 고사·군사 지명·의례 용어&lt;/li&gt;
&lt;li&gt;&lt;code&gt;大駕去邠&lt;/code&gt;, &lt;code&gt;陳根&lt;/code&gt;처럼 고전적 함의가 큰 표현&lt;/li&gt;
&lt;li&gt;효장세자 묘지의 판본별 이문&lt;/li&gt;
&lt;li&gt;인명·관직명의 정확한 한글 독음&lt;/li&gt;
&lt;li&gt;연호·간지와 서기 연도의 일대일 대조&lt;/li&gt;
&lt;/ul&gt;
&lt;p&gt;오류나 더 나은 해석이 있다면 GitHub Issue 또는 Pull Request로 수정 제안을 남길 수 있다.&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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